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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본인은 이번 법원의 결정을 지지함. ㅆㅂ 내같아도 저기에 화염병 던지겠다.
tag : 다음_의거때는_화염병_말고_더_좋은걸로ㅇㅇ
[경향신문] 군국주의의 핵, 야스쿠니
※본 포스팅에선, 원본의 혐짤은 기재하지 않음
애국심에 불타는 펜타곤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외로운 사람, 노엄 촘스키의《국가라는 이유로》에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부시 1세의 말이 나온다. “나는 미국이 한 일에 대하여 결코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무엇이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일본수상도 했다. 2006년 6월 28일 캐나다를 방문한 고이즈미 준히치로 수상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야스쿠니는 몇 번을 가더라도 내 자유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 15일, 고이즈미는 국내외 여론에 신경 끄고 야스쿠니 제단에 향을 피웠다. 8월 15일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식민지 입장에서는 광복절이고 항복 선언을 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패전일이다. ‘사실’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조지 부시 1세와 ‘내 마음대로’ 야스쿠니에 가서 절을 하겠다는 고이즈미는 한 국가의 정치수반이다. 일반인 신분이 아니므로 발언 파급력이 크다. 부시 1세가 말한 ‘사실’은 이라크를 비롯한 이슬람과 전 세계에 미군의 물리적 행사를 의미한다. 고이즈미의 ‘자유로운 참배’는 이웃 국가 눈치를 안 보고 야스쿠니를 받들어 모시겠다는 말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대일본제국 군국주의의 지주(支柱)였다.” 야스쿠니의 본질은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 250만 전사자의 피바다. 피의 제단(祭壇)이다. 일본은 늘 정의의 전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명치유신 이후 치룬 전쟁 중 단 한 건의 전쟁에서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할 기회로 명분을 내세우고 정당화했다. 그래서 여론을 한 개의 결집된 장소로 모으는데 주력했고 그것이 야스쿠니다.
일본인의 신(神)은 국가다. 황위는 신위(神位)고, 일왕은 신인(神人)이라는 자연스런 등식이 산출된다. 이쯤 되면 야스쿠니와 일왕, 일본이라는 국가의 삼각구도가 그려진다. 그렇다면 야스쿠니는 무엇이 문제일까. 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국내의 반대세력들이 매번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에선 두 개의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첫째, 야스쿠니와 정치적 함수 둘째, 야스쿠니와 일본의 운명이다. 야스쿠니가 침략자의 피로 세워진 신단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야스쿠니는 정치와 행보를 함께 했다. 열개 중의 하나만이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향한 행보였다면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책 말미에서 ‘야스쿠니 폐지’를 주장하는 아픈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조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성적인 주장과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신뢰성을 갖게 한다.
그 가운데 일본 지방재판소 판결에 관한 대목은 흥미롭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참배를 한 2001년 이후 야스쿠니 참배 관련 사건이 14건이나 재판에 상정되었다. 고이즈미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를 했어도 그의 신분은 수상이다. 그래서 권력에 굴복한 판결이 혐의 짙다. ‘위헌의 소지가 높다’, ‘위헌으로 볼 수도 있다’, ‘위헌으로 의심된다’, ‘앞으로도 계속 참배하면 위헌이다’ 와 같은 판결이 났다.
근대일본의 완벽한 군국주의 제사장치인 야스쿠니의 정체성은 250만 위령자 전부가 침략의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출신과 대만 출신의 병사가 포함되지만 민간인이나 외국인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 ‘완벽한 군사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요컨대 야스쿠니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집단을 모신 장소다.
야스쿠니는 전쟁에서 죽은 자를 이용해 권력을 회복하고픈 일왕의 야욕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권력에 집중한 정치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일본 언론은 침략전쟁에서 흘린 피를 그리스도의 구원의 피와 동격으로 만들었다. 야스쿠니는 일왕과 국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침략의 깃발을 앞세운 자들의 비인간적인 주검이 모인 공간이다. ‘애국심과 충성의 표현인 신사참배’는 ‘국민의 의무’라고 신봉하는 우경단체들이 있다. 지금 야스쿠니에 유골이 안치된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사쿠라 나무 아래서 결전을 약속하고 탄띠를 두르고 출전했다. 위안부를 공출하고, 남의 땅에 군홧발로 쳐들어와 총을 쏘고 목을 벤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향을 피워 추모한다.
야스쿠니는 군국주의의 핵(核)이다. 1942년 발간된 다카가미 가쿠소가 쓴《야스쿠니 정신》에는 야스쿠니와 일왕, 일본인의 위치가 삼위일체로 정립되어 있다. “모두 국가의 것입니다. 아니, 재산뿐만 아닙니다. 이 신체도, 생명도, 모두 천황 한 분으로부터 맡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천황(天皇)’은 하늘의 황제라는 뜻이다. 천황의 군대, 천황의 아이들, 천황의 백성은 천황이라는 구심점에 맹목적 충성을 받친다. 하늘의 명을 받는 군대,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들, 하늘의 지배를 받는 백성을 설파한다. 따라서 ‘천황’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어떤 상징을 나타내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극한에 다한 국가주의는 일왕과 국가가 곧 일심동체라고 설파한다. 이쯤하면 일왕은 일본인의 종교로 봐야 한다. 야스쿠니는 일왕을 국가와 동격화한 이념과 충성의 결집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는 그 어떤 직접적인 폭력과 억압보다 매우 위험한 상징성을 지녔다. “싸우는 국가란 제사 지내는 국가다.” 라는 말처럼 야스쿠니는 영령을 모시는 장소가 아니라 망령을 잉태하는 장소다.
고이즈미 시절까진 시민단체에서 적극 나선 결과 국립추도시설 설치와 A급 전범의 합사문제를 논의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의 뒤를 이어 수상이 된 아베 신조의 등장은 이 문제를 후퇴시켰다.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는 전 일본 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낸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다. 게다가 2006년 9월 6일 일본 왕실에서는 40년 9개월 만에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이 갓난쟁이는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되었다.
종전 67주년을 맞은 2012년 8월 15일 일본 각료는 대거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외에 55명의 의원도 참석했다.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부 각료가 참배 한 이후 3년 만에 재개된 일이다.
다음 인용문은 다카가미 가쿠쇼의《야스쿠니 정신》에서 발췌한 <야스쿠니 정신>이다.
"야스쿠니 정신은 전시에 군인만 가지는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에도 평시에도, 일본인 모두가 누구나 똑같이 견지해야 할 일본정신인 것이다. 그럼 이 야스쿠니 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결국 그것은 다음 말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서는 기쁘게 피를 흘려라. 사회를 위해서는 기쁘게 눈물을 흘려라. 자기를 위해서는 기쁘게 땀을 흘려라.”
즉, 야스쿠니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피의 헌정’이다. 생명을 버려서라도 일왕과 국가를 위한 승리를 쟁취하는 ‘충용(忠勇)’과 ‘의열(義烈)’의 이념이자 훈육이념인 것이다.
※본 포스팅에선, 원본의 혐짤은 기재하지 않음
애국심에 불타는 펜타곤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외로운 사람, 노엄 촘스키의《국가라는 이유로》에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부시 1세의 말이 나온다. “나는 미국이 한 일에 대하여 결코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무엇이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일본수상도 했다. 2006년 6월 28일 캐나다를 방문한 고이즈미 준히치로 수상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야스쿠니는 몇 번을 가더라도 내 자유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 15일, 고이즈미는 국내외 여론에 신경 끄고 야스쿠니 제단에 향을 피웠다. 8월 15일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식민지 입장에서는 광복절이고 항복 선언을 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패전일이다. ‘사실’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조지 부시 1세와 ‘내 마음대로’ 야스쿠니에 가서 절을 하겠다는 고이즈미는 한 국가의 정치수반이다. 일반인 신분이 아니므로 발언 파급력이 크다. 부시 1세가 말한 ‘사실’은 이라크를 비롯한 이슬람과 전 세계에 미군의 물리적 행사를 의미한다. 고이즈미의 ‘자유로운 참배’는 이웃 국가 눈치를 안 보고 야스쿠니를 받들어 모시겠다는 말이다.
“야스쿠니신사는 대일본제국 군국주의의 지주(支柱)였다.” 야스쿠니의 본질은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만든 250만 전사자의 피바다. 피의 제단(祭壇)이다. 일본은 늘 정의의 전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명치유신 이후 치룬 전쟁 중 단 한 건의 전쟁에서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할 기회로 명분을 내세우고 정당화했다. 그래서 여론을 한 개의 결집된 장소로 모으는데 주력했고 그것이 야스쿠니다.
일본인의 신(神)은 국가다. 황위는 신위(神位)고, 일왕은 신인(神人)이라는 자연스런 등식이 산출된다. 이쯤 되면 야스쿠니와 일왕, 일본이라는 국가의 삼각구도가 그려진다. 그렇다면 야스쿠니는 무엇이 문제일까. 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국내의 반대세력들이 매번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에선 두 개의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첫째, 야스쿠니와 정치적 함수 둘째, 야스쿠니와 일본의 운명이다. 야스쿠니가 침략자의 피로 세워진 신단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야스쿠니는 정치와 행보를 함께 했다. 열개 중의 하나만이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향한 행보였다면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책 말미에서 ‘야스쿠니 폐지’를 주장하는 아픈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조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성적인 주장과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신뢰성을 갖게 한다.
그 가운데 일본 지방재판소 판결에 관한 대목은 흥미롭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참배를 한 2001년 이후 야스쿠니 참배 관련 사건이 14건이나 재판에 상정되었다. 고이즈미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를 했어도 그의 신분은 수상이다. 그래서 권력에 굴복한 판결이 혐의 짙다. ‘위헌의 소지가 높다’, ‘위헌으로 볼 수도 있다’, ‘위헌으로 의심된다’, ‘앞으로도 계속 참배하면 위헌이다’ 와 같은 판결이 났다.
근대일본의 완벽한 군국주의 제사장치인 야스쿠니의 정체성은 250만 위령자 전부가 침략의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출신과 대만 출신의 병사가 포함되지만 민간인이나 외국인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 ‘완벽한 군사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요컨대 야스쿠니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집단을 모신 장소다.
야스쿠니는 전쟁에서 죽은 자를 이용해 권력을 회복하고픈 일왕의 야욕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권력에 집중한 정치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일본 언론은 침략전쟁에서 흘린 피를 그리스도의 구원의 피와 동격으로 만들었다. 야스쿠니는 일왕과 국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침략의 깃발을 앞세운 자들의 비인간적인 주검이 모인 공간이다. ‘애국심과 충성의 표현인 신사참배’는 ‘국민의 의무’라고 신봉하는 우경단체들이 있다. 지금 야스쿠니에 유골이 안치된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사쿠라 나무 아래서 결전을 약속하고 탄띠를 두르고 출전했다. 위안부를 공출하고, 남의 땅에 군홧발로 쳐들어와 총을 쏘고 목을 벤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향을 피워 추모한다.
야스쿠니는 군국주의의 핵(核)이다. 1942년 발간된 다카가미 가쿠소가 쓴《야스쿠니 정신》에는 야스쿠니와 일왕, 일본인의 위치가 삼위일체로 정립되어 있다. “모두 국가의 것입니다. 아니, 재산뿐만 아닙니다. 이 신체도, 생명도, 모두 천황 한 분으로부터 맡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천황(天皇)’은 하늘의 황제라는 뜻이다. 천황의 군대, 천황의 아이들, 천황의 백성은 천황이라는 구심점에 맹목적 충성을 받친다. 하늘의 명을 받는 군대,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들, 하늘의 지배를 받는 백성을 설파한다. 따라서 ‘천황’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어떤 상징을 나타내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극한에 다한 국가주의는 일왕과 국가가 곧 일심동체라고 설파한다. 이쯤하면 일왕은 일본인의 종교로 봐야 한다. 야스쿠니는 일왕을 국가와 동격화한 이념과 충성의 결집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는 그 어떤 직접적인 폭력과 억압보다 매우 위험한 상징성을 지녔다. “싸우는 국가란 제사 지내는 국가다.” 라는 말처럼 야스쿠니는 영령을 모시는 장소가 아니라 망령을 잉태하는 장소다.
고이즈미 시절까진 시민단체에서 적극 나선 결과 국립추도시설 설치와 A급 전범의 합사문제를 논의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의 뒤를 이어 수상이 된 아베 신조의 등장은 이 문제를 후퇴시켰다.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는 전 일본 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낸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다. 게다가 2006년 9월 6일 일본 왕실에서는 40년 9개월 만에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이 갓난쟁이는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되었다.
종전 67주년을 맞은 2012년 8월 15일 일본 각료는 대거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외에 55명의 의원도 참석했다.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부 각료가 참배 한 이후 3년 만에 재개된 일이다.
다음 인용문은 다카가미 가쿠쇼의《야스쿠니 정신》에서 발췌한 <야스쿠니 정신>이다.
"야스쿠니 정신은 전시에 군인만 가지는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에도 평시에도, 일본인 모두가 누구나 똑같이 견지해야 할 일본정신인 것이다. 그럼 이 야스쿠니 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결국 그것은 다음 말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서는 기쁘게 피를 흘려라. 사회를 위해서는 기쁘게 눈물을 흘려라. 자기를 위해서는 기쁘게 땀을 흘려라.”
즉, 야스쿠니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피의 헌정’이다. 생명을 버려서라도 일왕과 국가를 위한 승리를 쟁취하는 ‘충용(忠勇)’과 ‘의열(義烈)’의 이념이자 훈육이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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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법원 “류창은 정치범” 중국행… 일 반발 불가피
ㆍ한·중·일 외교파장 최소화 위해 법리적 판단 형식 ‘정치적 선택’
법원이 류창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일본 인도를 거절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류창의 외할머니는 한국인으로 위안부로 일본군에 끌려갔던 적이 있고, 중국인 할아버지도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독특한 배경 때문에 중국의 최고 지도부까지 류창의 신병 인도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일본으로 보내졌을 경우 한·중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의 일본 인도는 중·일 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함으로써 중국 내의 반일 여론이 커지는 것보다는 고국인 중국으로 보냄으로써 파장을 줄이는 게 길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한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사법부의 법리적 판단 형식을 빌려 류창의 송환을 결정한 것도 일본 정부의 대응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나 외교통상부가 류창의 중국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결정했기 때문에 일본은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유감을 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 정부는 3권분립이 존재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 특히 우익들이 크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
류창이 2011년 말 일본 우익들이 중시하는 야스쿠니 신사 입구에서 방화를 시도했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마침 아베 신조 신임 일본 총리의 특사인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이 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일본 내 반발 여론이 일본 정부의 기름 붓기로 인해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아베 신임 총리의 입장은 한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우호적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당분간은 현 정부 후반기에 최악으로 떨어졌던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가 화해 국면으로 가야 하는 시기에 미묘한 선택으로 까다로운 현안을 정부가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ㆍ한·중·일 외교파장 최소화 위해 법리적 판단 형식 ‘정치적 선택’
법원이 류창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일본 인도를 거절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류창의 외할머니는 한국인으로 위안부로 일본군에 끌려갔던 적이 있고, 중국인 할아버지도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독특한 배경 때문에 중국의 최고 지도부까지 류창의 신병 인도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일본으로 보내졌을 경우 한·중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의 일본 인도는 중·일 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함으로써 중국 내의 반일 여론이 커지는 것보다는 고국인 중국으로 보냄으로써 파장을 줄이는 게 길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한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석방 일본 야스쿠니 신사 방화 혐의로 일본 측이 송환을 요청한 중국인 류창(왼쪽)이 3일 법원의 일본 인도 거부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법부의 법리적 판단 형식을 빌려 류창의 송환을 결정한 것도 일본 정부의 대응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나 외교통상부가 류창의 중국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결정했기 때문에 일본은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유감을 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 정부는 3권분립이 존재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 특히 우익들이 크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
류창이 2011년 말 일본 우익들이 중시하는 야스쿠니 신사 입구에서 방화를 시도했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마침 아베 신조 신임 일본 총리의 특사인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이 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일본 내 반발 여론이 일본 정부의 기름 붓기로 인해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아베 신임 총리의 입장은 한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우호적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당분간은 현 정부 후반기에 최악으로 떨어졌던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가 화해 국면으로 가야 하는 시기에 미묘한 선택으로 까다로운 현안을 정부가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향신문] ‘야스쿠니 방화’ 중국인 일본에 안 보낸다
ㆍ법원, 류창 인도 거절 결정
한국 법원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 방화 혐의로 일본 측이 송환을 요청한 중국인 류창(38)을 일본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 재판을 진행해온 서울고법 형사20부(황한식 수석부장판사)는 3일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류창을 일본에 인도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질서와 헌법이념뿐 아니라 대다수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8시30분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류창은 조만간 중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범행 대상인 야스쿠니 신사가 법률상 종교단체 재산이지만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을 주도한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류창의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정치적 범죄’로 판단했다.
법무부는 이날 “사법부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류창은 지난해 1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이도 자신이라고 밝혔다. 일본 당국은 지난해 5월 류창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도 “류창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송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중·일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는 이번 결정에 반발 여론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법원이 법에 따라서 내린 결정”이라며 “관계국(일본)도 법치주의 원칙과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ㆍ법원, 류창 인도 거절 결정
한국 법원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 방화 혐의로 일본 측이 송환을 요청한 중국인 류창(38)을 일본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 재판을 진행해온 서울고법 형사20부(황한식 수석부장판사)는 3일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류창을 일본에 인도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질서와 헌법이념뿐 아니라 대다수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8시30분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류창은 조만간 중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범행 대상인 야스쿠니 신사가 법률상 종교단체 재산이지만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을 주도한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류창의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정치적 범죄’로 판단했다.
법무부는 이날 “사법부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류창은 지난해 1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이도 자신이라고 밝혔다. 일본 당국은 지난해 5월 류창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도 “류창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송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중·일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는 이번 결정에 반발 여론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법원이 법에 따라서 내린 결정”이라며 “관계국(일본)도 법치주의 원칙과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건 예전 그 어린이의 짤방과 이번 사건과 관련된 가림혐짤ㅇㅇ>
그러게 화염병 말고, 돈 좀 더 들더라도, 백린탄같은 걸 했어야지 'ㅅ'!!!!!
좌우지간, 본인은 이번 법원의 결정을 지지함. ㅆㅂ 내같아도 저기에 화염병 던지겠다.
tag : 다음_의거때는_화염병_말고_더_좋은걸로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