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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정치위원회의 성명서] 그러니 긴장할 짓을 하지 마십시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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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일 톈안먼사태 25년… 중, 준전시 수준 긴장


ㆍ기습 시위·위구르 테러 대비, 광장 주변 무장경찰 즐비
ㆍ전국 군·경에 전투준비 지시… 반체제 인사 감시도 강화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발발 25년을 앞두고 중국 당국이 베이징에서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에 돌입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단오절 연휴 마지막 날인 2일 톈안먼 광장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톈안먼 광장으로 진입하는 곳곳은 발디딜 틈 없이 혼잡스러웠다. 출입자를 대상으로 삼엄한 소지품 검사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광장 전체는 쇠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 진입 통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광장 동측의 6차선 도로는 한 차선만 뚫려 공안 차량만 오갈 뿐 일반 승용차들은 진입이 불가능했다. 인도에는 공안 차량이 곳곳에 주차해 수상한 거동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장경찰을 태운 차량이 광장 주변을 돌고, 공안 수십명이 인도에서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관광객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중화권 매체 보쉰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전국 군대와 무장경찰, 소방 당국에 통지문을 보내 고급 전투준비 상태에 진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관공서들은 자체 시설 보호에 들어갔고, 군경과 소방차들은 즉각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해방군 457의원 유치원은 지난달 29일 학부모들에게 통지문을 보내 단오절 연휴 기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나 공공장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말 것을 요청했다.

홍콩 시민들 “중국 내 민주주의 확립하라” 톈안먼 추모집회 홍콩 시민 3000여명이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사흘 앞둔 1일 중국의 민주주의 확립을 촉구하며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톈안먼 사태 추모 집회가 공개적으로 열리는 도시는 홍콩이 유일하다. 홍콩 | AFP연합뉴스




북경청년보와 북경신보에 따르면 베이징에는 군경 외에 지원자 85만명이 매일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신문가판대 판매원과 구두수선공 등을 포함한 정보수집원 10만명을 배치해 테러와 관련된 동향도 수집 중이다.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192개 지역에 보안 검문소가 설치됐으며, 지하철역에서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공항 수준의 검색이 실시되고 있다.

올해 중국 당국이 경계태세를 한층 강화한 것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기습 시위가 예상되는 데다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위구르족 세력의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체제 인사와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해마다 6월4일을 앞두고 반체제 인사들을 가택연금해 활동을 제한해왔지만 올해는 더욱 심해졌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48명이 구금 혹은 가택연금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톈안먼 사태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된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과 반체제 유명 여성 언론인 가오위(高瑜) 등이 포함돼 있다. 톈안먼 유가족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회의 창시자인 딩즈린(丁子霖)은 거주지인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가택연금돼 있다.

2일에도 홍콩 월간지 신유월간 창립자인 왕젠민(王健民)과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 전 편집인 궈중샤오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톈안먼 사건 재평가 관련 기사나 중국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베이징의 민주인사인 자젠궈(査建國)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 “톈안먼 사태를 앞둔 올해의 긴장 정도는 예년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의 살릴 셰티 사무총장은 “중국 당국은 6·4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무장 군경이 봉쇄한 베이징 톈안먼 광장… 추모의 촛불 밝히는 홍콩 빅토리아 공원


톈안먼 사태 25주년인 4일 톈안먼 광장 주변 검색을 강화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중국 공안들이 경찰 차량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 | AFP연합뉴스


18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4일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중국 당국의 철통 경비 때문에 중국령인 지역에서 톈안먼 사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곳은 홍콩이 유일하다. 홍콩 | AP연합뉴스



톈안먼(天安門) 사태 25주년인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일대는 무더운 날씨와 그물망 같은 감시로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반면 1997년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반환됐으나 고도의 자치를 누리고 있는 홍콩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톈안먼 광장 일대에는 이날 특수경찰 차량이 배치됐으며,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거나 군견을 동원해 검문활동을 벌이는 군경의 모습이 목격됐다. 지하철 톈안먼동역 방면에서 지하도를 통해 광장으로 진입하는 데 최소 60~70분이 소요됐다. 신분증 검사와 몸 수색, 가방 검사 등 3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입장이 허용됐으며, 외국인의 경우 여권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했다. 현지 공안은 “오늘은 특수한 날인 데다 특별 수색기간이어서 검사가 강화됐다”며 “왜 특수한 날인지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가택연금 중인 인권운동가 후자(胡佳)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그들(공산당)은 역사를 덮어버렸다. 그들이 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추모 활동이 봉쇄됐지만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이날 저녁 15만~20만명이 참석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홍콩 시민단체인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가 주최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재평가를 요구했다. 왕단(王丹)과 우얼카이시(吾爾開希) 등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상영됐다. 홍콩에서는 톈안먼 사태 이듬해부터 매년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경향신문] 학생 지도자 왕단·우얼카이시의 ‘톈안먼’ 그 후

ㆍ“원망·후회 없어… 한번 더 기회 오면 잘할 것”
ㆍ“대학살 중 살아남은 나 자신과 화해 안돼”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의 수배 리스트 1호와 2호에 올랐던 학생 지도자 왕단(王丹·45)과 우얼카이시(吾爾開希·46)는 모두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

베이징대 역사학과 학생이었던 왕단은 대만 둥우(東吳)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지난 26일 미국의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무런 원망과 후회가 없다”며 “젊은이라면 응당 사회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해야 하며, 이 점에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왕단은 “중국인들의 지지와 온정은 인생의 큰 수확이나 6·4 문제는 역사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당시의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못해 큰 부담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왕단(왼쪽)··우얼카이시



그는 “중국은 공산당 체제로는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지자들의 열정과 활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거대한 당을 굴복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중산층 계급의 각성, 국제사회의 압력, 사회모순의 누적, 독재에 맞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종합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타락하고 부패했지만 아직 지탱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왕단은 “정치투쟁은 전진과 후퇴가 있으며, 타협이 있는 예술”이라며 “당시 어렸기 때문에 잘 못했다. 한번 더 기회가 온다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민주에 대한 중국인의 열정은 존재하며 줄어든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왕단은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석방된 뒤 미국으로 망명해 하버드대에서 역사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사범대 학생이었던 우얼카이시는 뛰어난 대중연설로 시위 분위기를 휘어잡았던 카리스마 넘치는 학생 지도자였다.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출신으로, 베이징지역 대학생연합회장이기도 했다. 그는 죽은 사람들과 실현되지 못한 꿈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지난 26일 그는 AFP통신에 “내가 망명 중이란 사실, 대학살 가운데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며 “나와 가족, 중국에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 당시를 회고하면서 “중국 당국이 굴복하고 우리들의 정치개혁 요구에 응답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며 “(중국 지도자들이) 대화를 택했다면 중국의 정치 발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군부에 의한 진압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모두 위구르족인 그는 늙어가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려 시도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25년째 강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평론가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고국의 정치개혁이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고, 가족과도 헤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경험은 영화나 다른 어떤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체감할 수 없는 것”이라며 당시의 악몽 같은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몇가지 소품만 바꾸면 한국현대사에서 그장면 그대로 나온다는 게 함정? (...)>


니가 짭새들 깔아놓는다고해서 그게 쉽게 없어지겠니ㅇㅇ??




천안문에서 그지랄깽판을 치고, 체조하는 양반들 입틀어막고 뚜드러패고 앉았으니 저러니 중화사상 패권주의 소릴 듣지ㅋ


※여기서 미리 밝히지만, 본인은 중국 공산당을 일본 자민당과 썅놈들 쨉스아이돌(!!)그룹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아직은 요원하지만) 중국에서 패권주의같은 병신거적때기같은 쓰레기를 민주화 성공으로 폐기처분한다면, 친중 속성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음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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