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 이 곡이 민중가요냐 군악이냐 헤깔리긴 한데, 성격상 민중가요 쪽으로 집어넣습니다. 카테고리 오랜만에 채워야지, 어차피 민중가요도 대부분이 포크계잖.....;ㅅ;)
<안타깝게도, 소재와는 관련이 없긴 하지만, 대체품의 성격이 강합니다.>
[1]
"Oh come tell me Sean O'Farrell Tell me why you hurry so?"
"(숀) 오페럴. 말해보게. 왜 그리 서두르나?"
"Hush bouchal, hush and listen", And his cheeks were all a-glow.
"부켈. 조용히 해. 조용히 하고 들어보게" 오페럴의 뺨이 달빛에 빛났네
"I bear orders from the captain get you ready quick and soon,
"대장의 명령을 전하러 왔으니 서두르게
For the pikes must be togeth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 장창을 들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At the rising of the moon,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For the pikes must be togeth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 창을 지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2]
"And come tell me, Shawn O'Ferrall, Where the gathering is to be?"
"오페럴. 말해보게. 우리 집결지가 어디지?"
"At the old spot by the river, Right well known to you and me.
"강가의 오래된 그곳 모일 거야. 자네와 내가 알고 있는 그 장소라네.
One more word for signal token whistle out the marching tune,
"하나 더 있어. 휘슬 소리가 진군 신호라네,
With your pike upon your should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떠오를 때 휘슬이 울리면 우리는 창을 들고 전진할 걸세"
At the rising of the moon,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With your pike upon your shoulder at the rising of the moon
제군들과 창을 지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3]
Out of many a mud wall cabin eyes were watching through the night,
깊은 밤 토담집들 너머의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네.
Many manly heart was beating for the blessed warning light.
우리 동지들의 심장이 달빛 아래 고동치네
Murmers rang along the valleys to the banshees lonely croon
계곡따라 웅성거리는 소리는 밴시의 소리처럼 들리네
And thousands pikes were flashing by the rising of the moon.
수많은 동지들의 창검이 달빛 아래 번득이네.
By the rising of the moon By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And a thousand pikes were flashing by the rising of the moon
수많은 동지들의 창들이 달빛 아래 번득이네.
[4]
All along that singing river that black mass of men was seen,
강의 이편저편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몰려 있고
High above their shining weapons flew their own beloved green.
높이 솟은 창에 매달은 우리의 초록토끼풀이 휘날리네
"Death to every foe and traitor! Whistle out the marching tune,
"압제자와 변절자들을 응징하자! 전진!! 휘슬을 불며 전진하라!!
And hurrah, my boys, for freedom! 'T is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여. 달이 떠있는 동안 자유를 위해 함성지르세.
'T is the rising of the moon, 'T is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And an army fights for freedom at the rising of the moon
우리 아일랜드군은 달이 뜨는 밤에 자유를 위해 싸우네
"Oh come tell me Sean O'Farrell Tell me why you hurry so?"
"(숀) 오페럴. 말해보게. 왜 그리 서두르나?"
"Hush bouchal, hush and listen", And his cheeks were all a-glow.
"부켈. 조용히 해. 조용히 하고 들어보게" 오페럴의 뺨이 달빛에 빛났네
"I bear orders from the captain get you ready quick and soon,
"대장의 명령을 전하러 왔으니 서두르게
For the pikes must be togeth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 장창을 들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At the rising of the moon,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For the pikes must be togeth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 창을 지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2]
"And come tell me, Shawn O'Ferrall, Where the gathering is to be?"
"오페럴. 말해보게. 우리 집결지가 어디지?"
"At the old spot by the river, Right well known to you and me.
"강가의 오래된 그곳 모일 거야. 자네와 내가 알고 있는 그 장소라네.
One more word for signal token whistle out the marching tune,
"하나 더 있어. 휘슬 소리가 진군 신호라네,
With your pike upon your shoulder,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떠오를 때 휘슬이 울리면 우리는 창을 들고 전진할 걸세"
At the rising of the moon, At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With your pike upon your shoulder at the rising of the moon
제군들과 창을 지고 달이 뜨는 밤에 모일 걸세
[3]
Out of many a mud wall cabin eyes were watching through the night,
깊은 밤 토담집들 너머의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네.
Many manly heart was beating for the blessed warning light.
우리 동지들의 심장이 달빛 아래 고동치네
Murmers rang along the valleys to the banshees lonely croon
계곡따라 웅성거리는 소리는 밴시의 소리처럼 들리네
And thousands pikes were flashing by the rising of the moon.
수많은 동지들의 창검이 달빛 아래 번득이네.
By the rising of the moon By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And a thousand pikes were flashing by the rising of the moon
수많은 동지들의 창들이 달빛 아래 번득이네.
[4]
All along that singing river that black mass of men was seen,
강의 이편저편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몰려 있고
High above their shining weapons flew their own beloved green.
높이 솟은 창에 매달은 우리의 초록토끼풀이 휘날리네
"Death to every foe and traitor! Whistle out the marching tune,
"압제자와 변절자들을 응징하자! 전진!! 휘슬을 불며 전진하라!!
And hurrah, my boys, for freedom! 'T is the rising of the moon".
동지들이여. 달이 떠있는 동안 자유를 위해 함성지르세.
'T is the rising of the moon, 'T is the rising of the moon,
달이 뜨는 밤에, 달이 뜨는 밤에
And an army fights for freedom at the rising of the moon
우리 아일랜드군은 달이 뜨는 밤에 자유를 위해 싸우네
Rising of the Moon은 1798년 아일랜드 봉기 (Éirí Amach 1798 [게일어] Irish Rebellion of 1798 / United Irishmen Rebellion [英] : 1798)를 기념하는 아일랜드의 민중가요 (Rebel Song [英]. 아일랜드계 포크의 하부 장르)이다. 곡조 자체는 다른 아일랜드 노래인 The Wearing of the Green에서 따왔고, 가사는 존 키건 캐시 (John Keegan 'Leo' Casey [英] : 1846 ~1870)가 1867년에 붙여서 완성된 곡이다.
혹시나 해서 미리 알려두지만, '신사의 나라'나 빅벤, '버킹엄궁전'같은 걸 보면서 영국에 환상을 갖고 있는 몇몇 양반들은 영국이 진짜 남의집 들어가서 강도살인질하고 그랬냐고 묻는 사람이 의외로 되던데......
그럴 리가 있나??? 제국주의 시대 영국사는 잔혹사 그 자체다.
식민제국 치고 역사책 뒤집어서 피 줄줄 안떨어지는 나라가 없다.
아일랜드에서라면 특히 더.
.식민제국 치고 역사책 뒤집어서 피 줄줄 안떨어지는 나라가 없다.
아일랜드에서라면 특히 더.
※주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장구한 아일랜드 800년 해방투쟁사를 일일히 다 언급할 수 없으므로, 필요하다 생각하는 분량만 풉니다.
※ 각종 오류지적 및 보충 환영
※ 각종 오류지적 및 보충 환영
<헨리 2세의 아일랜드 파병을 묘사한 그림. 그나마 이때는 근현대적인 도덕관념이 적용이 안되서 '비교적' 낫던 때였으니...>
1167년,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당시 아일랜드의 국왕이였던 디아마이트 (Diarmait Mac Murchada [게일어/英] : 1110 ~ 1171)가 아일랜드 상왕 자리에서 쫒겨나자, 잉글랜드의 헨리 2세 (Henry II of England : 1133 ~ 1189)에게 지원요청을 한 것이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침략의 시작이였는데, 이때 당시는 그래도 타격은 미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였다. 어차피 중세의 통치 시스템인 봉건제 특성상 잉글랜드 본토 하나 관리하기도 힘든데 아일랜드에까지 지점망을 뻗치긴 힘들었던 탓에 몇몇 지역에만 영향력이 있을 뿐이였고, 나머지 대다수의 아일랜드 지역은 그냥 켈트족 소왕국이 살던대로 살았기 때문. 물론 헨리 8세부터 성공회를 내세운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침략이 시작되진 하지만, 크롬웰 (Oliver Cromwell [英] : 1599 ~ 1658)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는데, 크롬웰 재임재위기간 중에 있었던 아일랜드 침략 (Cromwellian conquest of Ireland [英] : 1649 ~ 1653)는 두고두고 화근이 되었다. 예를 들면 700~80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드로흐다 공성전 (Siege of Drogheda [英] : 1649)라든가...
<19세기에 그려진 드로흐다 공성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묘사한 삽화>
사실 이전에도 아일랜드인들은 패널 법 (Na Péindlíthe [게일어] Penal Laws [英])의 지배를 받는 처지였는데, 이게 무슨 법이냐 하면, 스튜어트 왕조 때 제정된 식민지화 정책의 산물로, 성공회교도가 아니면 공직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인데, 여기에 식민지화의 일환으로 플랜테이션 농업까지 행해졌으니, 이건 말이 영국 땅이지, 그냥 막나가자는 거나 마찬가지. 사실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아일랜드인의 땅을 강제로 뺏은 다음, 잉글랜드에서 건너온 양반들이나 개종한 아일랜드인에게 땅을 노놔주고, 먹고 팔만한 작물들은 아일랜드에서 키워 잉글랜드 본토로 삥뜯어가는 일이 보란듯이 일어나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밥은 밥대로 굶는 쒵같은 상황이 일어난 동네가 아일랜드였으니...(...) 훗날 일어날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 (An Drochshaol [게일어] Irish Potato Famine [英] : 1845 ~ 1852)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당시 영국에서 발행된 신문인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삽화>
그래도 세월은 흘러가고, 그 사이 계몽주의 (Enlightenment [英])라 불리는 - 그러니까 정치와 사회,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상운동으로, 현재의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었다. 예를 들면 존 로크 (John Locke [英] : 1632 ~ 1704)가 주창했던 사회계약설에서 비롯한 주권재민 -그러니까, 어떠한 정부도 인민의 동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러한 정부는 인민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하고,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국민에 의해 파기될 수 있다고 하는 사상이라던가...
<(물론 좀 훗날의 얘기긴) 하지만 이성의 시대(가 추구한 근대)는 양차대전을 계기로 확실히 박살이 나고 말았으니...(...)>
하지만, 로크의 고향인 영국은 당연히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의'라고 해봐야 돈지갑 좀 두둑하고 방구깨나 뀐다는 소수 엘리트들의 동의겠지. (...) 영국 본토에서도 이런 주장에 대해서 귀꾸녕을 막고 시끄럼아몰랑이나 외치는데, 식민지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동군연합 형식상) 완전히 합병된 본토'인 아일랜드에서조차도.
하지만, 계몽주의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다시 잉글랜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하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예를 들면 1780년대 더블린에서 결성되었고, 1791년에 재편된 아일랜드인 연합회 (Cumann na nÉireannach Aontaithe [게일어] Society of United Irishmen [英])같은 조직이다. 당시 연합 아일랜드인회는 울프 톤 (Theobald Wolfe Tone [英] : 1763 ~ 1798)을 창립자 겸 수장으로 두고 있었던 단체가 있었는데, 아일랜드가 아직 동군연합이라는 것과, 의회가 영국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아일랜드 의회에 진출, 개혁을 통한 아일랜드의 권리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바탕으로 움직이던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단체였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무장봉기를 통해 구체제 타도 (잉글랜드 축출)와 공화국 건설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문장과, (1900년대에 그린) 1798년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주요 인사들을 그린 그림.
문장을 자세히 보면 해방노예의 상징인 프리지아 모자 (Phrygian Cap [英])이 보인다>
이 과정에서 병력 확보가 시급한 문제인데, 의외로 모병은 쉬웠다고 한다. 이 당시, 안그래도 1740년에 기근이 터져서 200만여명이 죽고, 또다른 200만여명은 이역만리 (대부분 북미) 타향살이를 했던 상황인데다, 팔만한 물건을 만들어도 항해조례 (Navigation Acts [英])에 따라 기껏 만들어둔 물건이 오도가도 못하니, 가만히 있어도 혈액이 역류하고 짜증이 솟구치는 게 현실이였던지라 누가 건드리면 죽빵 여러대존나맞고한대더맞을 상태였다.
게다가 크롬웰과 잉글랜드가 그렇게 밟아대고 난리를 쳤지만 아일랜드 내부에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반영투쟁 비밀결사들이 여럿 있어서, 기존의 중소규모의 조직원들이 연합회에 가입해서 세를 불려갔던 것. 이렇게 세를 불린 연합회는 1794년 5월 24일, 총 병력 약 5만여명(과 후술할 1000여명의 프랑스군 파병병력)이 잉글랜드에 대한 무장투쟁을 계획하였다.
물론 (동군연합이라고는 해도 영국의 조이스틱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일랜드 왕국이 이런 요상한 냄새를 못맏았을 리가 없다. 당시 아일랜드 왕국 정부는 1796년에 반란법을 통과시키고 인신보호법을 일시 유예시키면서 배째라로 나가기 시작했고, 이도 모자라, 1797년에는 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사령관인 제라드 레이크 (Gerard Lake, 1st Viscount Lake [英] : 1744 ~ 1808)가 계엄령 선포와 더불어 개인소유 무기를 압수하고,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기관지인 노던 스타 (Northern Star) 지를 강제정간시켰을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보였을 정도로, 연합회를 해산시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보였으니,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는 1798년 봄에 겨우겨우, 연합회 급진파 간부들을 체포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해 5월에 아일랜드 봉기의 신호탄이 되었으니, 불난 집에 가스밸브를 열어주고 네이팜까지 아낌없이 부어준 결과가 되었다.
비록 가진게 변변찮아서 장창이 주력 무기였지만 승승장구하여 한때 아일랜드 남부를 장악한 쾌거를 올렸다. 봉기 초기에는 얼스터 지역 동부와 웩스퍼드 지방에서만 일어난 '별거 아닌' 수준이였지만, 이제까지 영국이 해온 짓들이 엄청난지라 아일랜드 전역에 봉기가 시작되었는데, 한때 아일랜드 '폭도'들은 아일랜드 남부 전역을 해방시키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의 가사에 자꾸 달이 언급되는 건, 달 뜨는 밤이 봉기의 신호탄이였기 때문. 게다가 프랑스 혁명정부에서 아일랜드를 원조하기 위한 파병안까지 통과됬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영국의 존나 높으신 것들은 존내 쥐어짜던 기세는 어디가고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할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는데, 크게 꼽으면 대략 두가지다. 첫번째는 프랑스에서 보낸 파병병력의 수가 시원찮았다는 것.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기의 정책에 의거, 아일랜드 원정계획 (Expédition d'Irlande [彿])에 의거, 15000여명의 병력 파병을 약속했고, 실제로 1796년에 라자르 오슈 (Lazare Hoche [彿] : 1768 ~ 1797)를 지휘관으로 임명한 후, 원군을 병력을 아일랜드 남부의 벤트리 만 (Bantry Bay [英])에 파병하긴 했는데, 프랑스 해군의 미숙한 항해와 거지같은 날씨 때문에 도착한 병력은 겨우 1500여명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영국의 유혈진압 때문에 일이 다 끝나가기 직전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름 정예병력이였던지라 영국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아일랜드인과 합류해서 몇건 승리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내부 분열에 있었다. 연합회의 노선변경에 영향을 준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도 발단은 아일랜드 1798년 아일랜드 봉기와 많은 부분이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저 둘은 종교적 기반이 약한 계몽주의자 중심의 혁명이였지만 아일랜드는 종교에 기반을 둔 - 그러니까, 아일랜드 내의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의 연합이였던지라 언제든지 핀트가 안맞으면 얼굴붉히고 머리끄댕이 잡아댕기는 자중지란이 일어날 공산이 컸다. 사실 18세기 이후부터는 아일랜드에서 나고자란 잉글랜드계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일랜드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많이 순화된 상태였던지라 이런 연합이 가능한 측면도 있었는데, 서로 성향이 다른 주체의 연합이였던 탓에 내부분열의 늪에 빠졌던 것이다.
실제로 아일랜드 북부에서는 농민들의 반영투쟁은 종교에 기반을 둔 탓에, 종파주의 형태를 띠어 가톨릭계 단체인 수호자(Na Cosantóirí [게일어] Defenders [英])과 개신교 계통의 단체인 '피프 오데이 보이스' (Peep O'Day Boys [英]) 보수주의 단체인 오렌지회 (Orange Boys [英] : 1792 창설)가 내분을 일으켜 역량이 분산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래서 그랬던지, 헨리 문로 (Henry Munro [英] : 1758 – 1798)가 이끄는 북부의 아일랜드 단체의 연합회 소속 병력은 발리나인치 (Ballynahinch)에서 영국군에게 패전했고, 연합회 소속의 웩스포드 반란군 (Wexford Rebellion [英])은 영국군을 몇번 깨는 데 성공은 했지만, 뉴로스 (New Ross [英])를 점령하는 데는 실패해서 이들도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에 봉기 후반기인 6월 중순에 레이크 장군이 지휘하는 정부군 주력군이 웩스포드에 집결했고 결국 연합회 병력은 비네거 힐 전투 (Cath Chnoc Fhíodh na gCaor [게일어] Battle of Vinegar Hill [英] : 1798)에서 참패하고 지휘부가 무너지면서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의 독립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까 언급한 프랑스 파병병력들이 도착한 때가 이 비네거 힐 전투가 끝난 때였으니...(...)
'반란'이 끝난 후의 영국은 저 어디 레이저표식 찍찍그은 어느 폭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길 포기할 짓을 여기저기서 벌였는데, 스컬라보그 헛간 학살 (Scullabogue Barn Massacre [英] : 1798)과 같은 보복성 학살까지 저질렀고, 이로부터 2년 후, 아일랜드는 통합법 (Acts of Union 1800 [英])으로 인해 아일랜드 의회는 영국 의회로 강제합병까지 당했으니, 아일랜드 봉기는 실패로 끝났다. 물론 제임스 코코난 (James Corcoran [英] : 1780? ~ 1804)과 잔존병력들은 게릴라전까지 해가며 맞섰지만, 1804년에 영국군에 의해 사살당했고, 이것으로 아일랜드 해방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물론 당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를 그냥 잡아먹기엔 그랬는지,당근을 주겠답시고 가톨릭교도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보란듯이 사기를 치고 뮝기적대다가, 30여년이 지나서야 가톨릭교도 해방령 (Catholic emancipation [英] : 1829)이란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아일랜드 봉기가 이렇게 사람만 죽고 성과없이 끝난 것이 아니였다. 이 이후 벌어질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은 이 1798년 봉기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해당 사건이 항상 기념되곤 하는데, 예를 들면 대표적인 봉기 관련 중요 행사가 네번 - 1898년, 1938년, 1948년, 1998년에 열렸다. 특히 1938년은 아일랜드 봉기 140주년이자, 아일랜드가 해방된 해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았으며 1948년은 아일랜드가 공화국으로 출범하기 전에 기념되었던 탓에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1897년에 아일랜드 해방투쟁 진영은 98 클럽 (98 Clubs [英])이라는 행사를 기획하고,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수장이였던 울프 톤의 기념비를 세우는 등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년 행사에 맞불을 놓아 해방운동을 대중화시킨 전례가 있다. 예를 들자면, 98클럽 행사의 일부로 (지금도 존재하는) 웩스포드의 불링 (Bull Ring)이라는 지역에 무명참전용사의 동상이 올리버 세퍼드 (Oliver Sheppard)에 의해 세워졌다. 왜 하필 웩스포드의 불링인가 하면, 이 지역이, 크롬웰 군대가 1949년에 이 지역 거주민들을 학살했던 곳이고, 아일랜드 봉기 때엔 봉기 세력이 쓸 장창을 만드는 곳이였기 때문. 1798년 아일랜드 봉기가 아일랜드 해방투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Rising of the Moon이 아일랜드에선 워낙 유명한 민중가요인 탓에 아일랜드 포크송 좀 할줄 아는 그룹들은 한번씩 불러봤을 텐데, 본 포스팅에 쓰인 곡은 저 유명한 더블리너스 (The Dubliners [英])가 부른 곡이다.
※ 이 내용과 동아시아 어느 나라와 패턴이 비슷해 보이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닌것 같기도 맞는것같기도한거같은것같지아니할수도있을겁니다 'ㅅ')
<본 재연은 특정 사실과 관련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동군연합이라고는 해도 영국의 조이스틱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일랜드 왕국이 이런 요상한 냄새를 못맏았을 리가 없다. 당시 아일랜드 왕국 정부는 1796년에 반란법을 통과시키고 인신보호법을 일시 유예시키면서 배째라로 나가기 시작했고, 이도 모자라, 1797년에는 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사령관인 제라드 레이크 (Gerard Lake, 1st Viscount Lake [英] : 1744 ~ 1808)가 계엄령 선포와 더불어 개인소유 무기를 압수하고,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기관지인 노던 스타 (Northern Star) 지를 강제정간시켰을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보였을 정도로, 연합회를 해산시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보였으니,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는 1798년 봄에 겨우겨우, 연합회 급진파 간부들을 체포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해 5월에 아일랜드 봉기의 신호탄이 되었으니, 불난 집에 가스밸브를 열어주고 네이팜까지 아낌없이 부어준 결과가 되었다.
비록 가진게 변변찮아서 장창이 주력 무기였지만 승승장구하여 한때 아일랜드 남부를 장악한 쾌거를 올렸다. 봉기 초기에는 얼스터 지역 동부와 웩스퍼드 지방에서만 일어난 '별거 아닌' 수준이였지만, 이제까지 영국이 해온 짓들이 엄청난지라 아일랜드 전역에 봉기가 시작되었는데, 한때 아일랜드 '폭도'들은 아일랜드 남부 전역을 해방시키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의 가사에 자꾸 달이 언급되는 건, 달 뜨는 밤이 봉기의 신호탄이였기 때문. 게다가 프랑스 혁명정부에서 아일랜드를 원조하기 위한 파병안까지 통과됬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영국의 존나 높으신 것들은 존내 쥐어짜던 기세는 어디가고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할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1798년 아일랜드 봉기 관련 그림들 (당대 및 후대)>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는데, 크게 꼽으면 대략 두가지다. 첫번째는 프랑스에서 보낸 파병병력의 수가 시원찮았다는 것.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기의 정책에 의거, 아일랜드 원정계획 (Expédition d'Irlande [彿])에 의거, 15000여명의 병력 파병을 약속했고, 실제로 1796년에 라자르 오슈 (Lazare Hoche [彿] : 1768 ~ 1797)를 지휘관으로 임명한 후, 원군을 병력을 아일랜드 남부의 벤트리 만 (Bantry Bay [英])에 파병하긴 했는데, 프랑스 해군의 미숙한 항해와 거지같은 날씨 때문에 도착한 병력은 겨우 1500여명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영국의 유혈진압 때문에 일이 다 끝나가기 직전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름 정예병력이였던지라 영국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아일랜드인과 합류해서 몇건 승리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였다.
<프랑스의 아일랜드 파병 실패를 묘사한 삽화. 실제로 날씨와 영국 해군에 의해 함대가 뿔뿔히 흩어졌으니...>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내부 분열에 있었다. 연합회의 노선변경에 영향을 준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도 발단은 아일랜드 1798년 아일랜드 봉기와 많은 부분이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저 둘은 종교적 기반이 약한 계몽주의자 중심의 혁명이였지만 아일랜드는 종교에 기반을 둔 - 그러니까, 아일랜드 내의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의 연합이였던지라 언제든지 핀트가 안맞으면 얼굴붉히고 머리끄댕이 잡아댕기는 자중지란이 일어날 공산이 컸다. 사실 18세기 이후부터는 아일랜드에서 나고자란 잉글랜드계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일랜드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많이 순화된 상태였던지라 이런 연합이 가능한 측면도 있었는데, 서로 성향이 다른 주체의 연합이였던 탓에 내부분열의 늪에 빠졌던 것이다.
실제로 아일랜드 북부에서는 농민들의 반영투쟁은 종교에 기반을 둔 탓에, 종파주의 형태를 띠어 가톨릭계 단체인 수호자(Na Cosantóirí [게일어] Defenders [英])과 개신교 계통의 단체인 '피프 오데이 보이스' (Peep O'Day Boys [英]) 보수주의 단체인 오렌지회 (Orange Boys [英] : 1792 창설)가 내분을 일으켜 역량이 분산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래서 그랬던지, 헨리 문로 (Henry Munro [英] : 1758 – 1798)가 이끄는 북부의 아일랜드 단체의 연합회 소속 병력은 발리나인치 (Ballynahinch)에서 영국군에게 패전했고, 연합회 소속의 웩스포드 반란군 (Wexford Rebellion [英])은 영국군을 몇번 깨는 데 성공은 했지만, 뉴로스 (New Ross [英])를 점령하는 데는 실패해서 이들도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에 봉기 후반기인 6월 중순에 레이크 장군이 지휘하는 정부군 주력군이 웩스포드에 집결했고 결국 연합회 병력은 비네거 힐 전투 (Cath Chnoc Fhíodh na gCaor [게일어] Battle of Vinegar Hill [英] : 1798)에서 참패하고 지휘부가 무너지면서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의 독립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까 언급한 프랑스 파병병력들이 도착한 때가 이 비네거 힐 전투가 끝난 때였으니...(...)
<비네거 힐 전투를 묘사한 그림. (저 위의 리인액트 사진도 이 전투가 소재이다)>
'반란'이 끝난 후의 영국은 저 어디 레이저표식 찍찍그은 어느 폭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길 포기할 짓을 여기저기서 벌였는데, 스컬라보그 헛간 학살 (Scullabogue Barn Massacre [英] : 1798)과 같은 보복성 학살까지 저질렀고, 이로부터 2년 후, 아일랜드는 통합법 (Acts of Union 1800 [英])으로 인해 아일랜드 의회는 영국 의회로 강제합병까지 당했으니, 아일랜드 봉기는 실패로 끝났다. 물론 제임스 코코난 (James Corcoran [英] : 1780? ~ 1804)과 잔존병력들은 게릴라전까지 해가며 맞섰지만, 1804년에 영국군에 의해 사살당했고, 이것으로 아일랜드 해방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물론 당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를 그냥 잡아먹기엔 그랬는지,
<제임스 코코난의 마지막 저항을 그린 당대 삽화. 위는 굳이 설명이 필요한지 'ㅅ'>>
하지만 아일랜드 봉기가 이렇게 사람만 죽고 성과없이 끝난 것이 아니였다. 이 이후 벌어질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은 이 1798년 봉기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해당 사건이 항상 기념되곤 하는데, 예를 들면 대표적인 봉기 관련 중요 행사가 네번 - 1898년, 1938년, 1948년, 1998년에 열렸다. 특히 1938년은 아일랜드 봉기 140주년이자, 아일랜드가 해방된 해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았으며 1948년은 아일랜드가 공화국으로 출범하기 전에 기념되었던 탓에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1897년에 아일랜드 해방투쟁 진영은 98 클럽 (98 Clubs [英])이라는 행사를 기획하고, 아일랜드인 연합회의 수장이였던 울프 톤의 기념비를 세우는 등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년 행사에 맞불을 놓아 해방운동을 대중화시킨 전례가 있다. 예를 들자면, 98클럽 행사의 일부로 (지금도 존재하는) 웩스포드의 불링 (Bull Ring)이라는 지역에 무명참전용사의 동상이 올리버 세퍼드 (Oliver Sheppard)에 의해 세워졌다. 왜 하필 웩스포드의 불링인가 하면, 이 지역이, 크롬웰 군대가 1949년에 이 지역 거주민들을 학살했던 곳이고, 아일랜드 봉기 때엔 봉기 세력이 쓸 장창을 만드는 곳이였기 때문. 1798년 아일랜드 봉기가 아일랜드 해방투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일랜드 웩스포드에 위치한 1798년 아일랜드 봉기 참전용사 기념동상>
이 Rising of the Moon이 아일랜드에선 워낙 유명한 민중가요인 탓에 아일랜드 포크송 좀 할줄 아는 그룹들은 한번씩 불러봤을 텐데, 본 포스팅에 쓰인 곡은 저 유명한 더블리너스 (The Dubliners [英])가 부른 곡이다.
※ 이 내용과 동아시아 어느 나라와 패턴이 비슷해 보이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닌것 같기도 맞는것같기도한거같은것같지아니할수도있을겁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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