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4.19 혁명 당시 집회에 참가한 진영숙 (1944 ~ 1960)의 마지막 유서.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糾彈),광정(匡正) 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傳橫)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이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든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이 헤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장(掌)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다. 우리에게서 자유는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戰場)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戰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으로 발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을 무시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빡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懺屍)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學究)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4.19 선언문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 강명희의 시. 당시 수송국민학교 재학
[2]
오늘은 4.19 혁명 (April 19 Revolution [英] 1960) 5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tag : 한국현대사, 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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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Clik here to view.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4.19 혁명 당시 집회에 참가한 진영숙 (1944 ~ 1960)의 마지막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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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糾彈),광정(匡正) 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傳橫)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이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든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이 헤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장(掌)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다. 우리에게서 자유는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戰場)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戰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으로 발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을 무시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빡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懺屍)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學究)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4.19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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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 강명희의 시. 당시 수송국민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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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향신문] “민주·언론자유 후퇴… 서민 고통… 한국은 4·19혁명 전야 같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학생운동을 벌인 이른바 ‘4·19 세대’들은 현재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가 돼 있다.
18일 만난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69·사진)은 “2012년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4·19 혁명 전야와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정 의장은 “지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후퇴했고, 남북관계도 악화된데다 비정규직 문제, 실업률 등 서민들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마치 4·19 혁명 전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민심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게 4월 혁명”이라며 “우리는 깊은 곳에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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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장은 “4·19 혁명은 청년과 학생들이 맨주먹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했고, 그 정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민주정신,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자주통일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4월혁명 정신이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을 겪었지만 이후에도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 자주통일운동으로 이어져 왔다”고 덧붙였다. 정 의장은 “그렇게 국민들이 피눈물로 이룬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 도처에서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정 의장은 그래서 지난번 ‘조선·중앙·동아 종편 취재거부 사회원로 선언’과 ‘파업언론 지지 선언’에도 적극 동참했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을 정권이 장악해서 이 시간에도 언론인들이 파업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권력과 돈을 동원해서 불법적 민간인 사찰을 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불거졌고요. 언론을 정권이나 기득권층의 홍보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독재정권의 수법입니다.”
정 의장은 “지난해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한 시도나 이승만 동상을 반세기 만에 건립한 일, 방송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특집물을 내놓는 것들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며 “친일, 독재, 수구 세력이 역사의 정통성이 있는 것인 양 호도하는 일이고 이는 정권 교체기에 앞서 계획적으로 진행된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19 52주년을 맞은 올해는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사월혁명회는 그때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이 많고 4월혁명의 정신을 공감하는 사람들도 회원으로 있다”고 말했다.
사월혁명회(옛 사월혁명연구소)는 1960년 4월혁명에 참가했던 세대가 “4월혁명 이념의 올바른 정립과 그 구현”을 목적으로 1988년 6월 설립했다. 현재 98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으며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하고 있다.
정 의장은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신문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학생운동을 벌인 이른바 ‘4·19 세대’들은 현재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가 돼 있다.
18일 만난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69·사진)은 “2012년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4·19 혁명 전야와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정 의장은 “지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후퇴했고, 남북관계도 악화된데다 비정규직 문제, 실업률 등 서민들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마치 4·19 혁명 전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민심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게 4월 혁명”이라며 “우리는 깊은 곳에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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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장은 “4·19 혁명은 청년과 학생들이 맨주먹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했고, 그 정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민주정신,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자주통일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4월혁명 정신이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을 겪었지만 이후에도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 자주통일운동으로 이어져 왔다”고 덧붙였다. 정 의장은 “그렇게 국민들이 피눈물로 이룬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 도처에서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정 의장은 그래서 지난번 ‘조선·중앙·동아 종편 취재거부 사회원로 선언’과 ‘파업언론 지지 선언’에도 적극 동참했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을 정권이 장악해서 이 시간에도 언론인들이 파업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권력과 돈을 동원해서 불법적 민간인 사찰을 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불거졌고요. 언론을 정권이나 기득권층의 홍보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독재정권의 수법입니다.”
정 의장은 “지난해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한 시도나 이승만 동상을 반세기 만에 건립한 일, 방송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특집물을 내놓는 것들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며 “친일, 독재, 수구 세력이 역사의 정통성이 있는 것인 양 호도하는 일이고 이는 정권 교체기에 앞서 계획적으로 진행된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19 52주년을 맞은 올해는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사월혁명회는 그때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이 많고 4월혁명의 정신을 공감하는 사람들도 회원으로 있다”고 말했다.
사월혁명회(옛 사월혁명연구소)는 1960년 4월혁명에 참가했던 세대가 “4월혁명 이념의 올바른 정립과 그 구현”을 목적으로 1988년 6월 설립했다. 현재 98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으며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하고 있다.
정 의장은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신문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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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19 혁명 (April 19 Revolution [英] 1960) 5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현대사는, 일제 파시스트의 식민지배의 잔재와,
한국전쟁의 여파,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문민독재와 군사독재에 맞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이 있던 시기이기도 한 만큼
한국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자,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났던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LIBERTAS PRECIUM HABET
tag : 한국현대사, 4.19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