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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역사연구소]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에도 그것들은 있었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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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역사연구소]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에도 그것들은 있었다 2/5

<안타깝게도, 앞에 내세울 짤이 업ㅂ습니다.>



저번 시간엔 1930년 당시 라디오 방송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교육방송에 관한 포스팅을 했었습니다. 이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라디오 방송은 가히 혁신적인 미디어였던지라, 반향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모두 반긴 것은 아닙니다.

누가 엇박자를 타느냐고요?

바로 기존의 신문사들입니다.




이유는 신문사들이 씰데업ㅂ이 남들이 YES할때 지혼자 NO하고 앉아있는 까이에나 반골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라디오는 기계만 있으면 실시간으로 세상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었지만, 신문은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 걸려야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이러한 라디오 붐은 신문사들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현상이였습니다. 자칫하다간, 신문이라는 매체가 구시대의 유물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신문은 살아남았고, 현재까지도 주요 언론매체들 중 하나였지만, 당시엔 신문사는 생계(?)와 권위에 큰 위협을 느낄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그리고 이러한 신문사의 공포는 1938년에 극대화되기 시작합니다. 1938년 5월에 룩셈부르크 출신 이민자 출신의 발명가이자 잡지 발행인 겸 소설가였던 휴고 건스백 (Hugo Gernsback [英] : 1884 ~ 1967)이 라디오-TV잡지 (Short Wave and Television magazine [英])라는 잡지에 신문사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물건에 대하여 예측했거든요. 이름하여 '라디오 신문수신기 (Radio to Print News Right In Your Home [英])'라는 물건입니다. 말 그대로 신문을 단파라디오 신호를 통해서 신문을 찍어내주는...그러니까, 가정용 전보 - 지금으로 치자면 팩스 - 지방에 따라 팩시밀리 (Facsimile [英/羅])에 가까운 물건이고, 더 나가면, PDA나 스마트폰 등의 RSS (Really Simple Syndication [英])에 가까운 물건이 조만간 널리 보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그래도 라디오 공포증(?)에 걸린 신문사인데, 이젠 심장이 쬬그라드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요.





<신문사의 심장혈관수축을 책임지는 그 기계 (1938년제)>


사실 4년 전에도 이러한 현상을 이렇게 예측한 바가 있습니다. 같은 잡지는 아니고, 건스백이 소유한 잡지사의 출간물이긴 한데, 물론 그 당시와 지금(1938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겠지만요.

<신문사를 굶겨죽이려 작정한(?) 對신문사 망언제조기(!?)였던 휴고 건스백의 거룩하신(?) 영정과...>


<1934년 4월, 라디오 기술 잡지에 실린 '라디오 신문'에 관한 일러스트>


1934년 4월, 휴고 건스백은 라디오 기술 잡지 (Radio-Craft) 에서 '라디오 신문'에 관한 예측을 싣습니다. 커버스토리의 그림이 바로 그 라디오 신문입니다. 표지의 그림과 다음 쪽의 그림과 비교해 보세요. (중략)

이 글에서 말했다시피, 라디오 팩스 신호 (Radio facsimile signals)는 여러분 주위에 존재합니다. 최소 23개의 방송사 - 그 중 권위있는 방송사들, 그리고 단파라디오 중계소는 지금 미 연방통신위원회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英])의 특별허가를 얻기 위해, 팩스 신호 송신을 실험중입니다.

사실 팩스 - 그러니까, 팩시밀리 자체는 1846년에 이미 스코틀랜드 출신 발명가였던 알렉산더 베인 (Alexander Bain : 1811 ~ 1877)이 발명해내긴 했습니다만, 그리 실용적이진 못했기 때문에 잘 금방 묻혔던 흑역사가 있었고, 그러한 탓에 이제까지 듣보잡(?)이였던지라, 저 잡지에서 망언(?)을 할 당시까지에는 그리 쓰이지 않던 물건이였습니다. 이랬던 팩스가 갑자기 자기들의 입지를 위협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니, 신문사가 충격과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팩스의 초대 발명자였던 알렉산더 베인과, 그가 발명해낸 초기의 팩스 (1850년대제)>


하지만 이 망언(?)들은 근거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1938년 2월 14일에 윌리엄 핀치 (William George Harold Finch)가 이 '라디오 신문' 그러니까, 팩스를 상용화하기 시작했거든요. 라디오 스펙트럼 (Radio Spectrum [英])이 밤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 다 자는 시간대인 자정부터 오전 6시 안에 뉴스를 찍어서 팩스로 보내주는 무선팩스기를 발명하게 됩니다. 게다가 FCC의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신문사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이정도면 신문사들 입장에선 엽기호러쑈킹이 따로 없다 할 수 있겠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도와 정확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적어도) 기존의 신문사들을 위협할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였습니다. (현대에 비하면) 초기단계의 물건이였기 때문에 실시간이 아닌 몇시간 '정도'의 오차가 있었거든요.






<자신의 팩스를 시연중인 W.G.H 핀치와. (해당 영상의 출처를 보고프면 클릭)>


<RCA社의 '라디오 신문'을 이용중인 어느 前 애독자. 그만둬!!!! 그만둬어어!!! (!?!?)>


사실 원리 자체는 이미 알렉산더 베인이 만들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 양반이 원래는 시계 기술자였고, 초기의 팩스도 시계 관련 기술이 반영되었거든요, 전신선의 양끝에 흔들리는 추를 달고,송신부에 달린 추에 철침을 달아서, 수신부에서는 추가 화학 처리된 종이 위를 왕복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이 당시엔 모스 부호 전용에 가까웠던 물건 (Chemical Telegraph [英])인데다가, 개념에 비해 쓸만한 물건이 아니였거든요. 당시 '라디오 신문'에 실린 핀치식 팩스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현대인이 생각하는 만큼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당시 핀치의 팩스로 시험해본 전보>



팩스는 사진이나 신문지 (News Bulletins)과 같은 문서를 송신기 위의 '스캐너'에 올린다. 1인치당 100줄이 스캔되면, (사진이나 문서의) 명암과 그림자의 정도에 따라 송신기가 주기적으로 라디오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들이 무선이나 유선을 통해 수신되면, 기록용 철필 (Recording Stylus)을 통과하는데, 이때 철필이 움직이면서 화학처리된 용지 위에 (화학반응을 통하여) 다양한 굵기의 먹선을 긋는다. 이렇게 해서 이 일러스트에 실린 팩시밀리가 그려낸 그림을 받을 수 있고, 발간물이나 그림이나 사진 등의 매체도 손쉽게 복사-전송할 수 있다.



게다가 느려터진 건 둘째치고, 더 큰 문제(?)가 있었습이다. 이 팩스는 핀치와 RCA社 양쪽에서 실험작을 만들고 있었는데, 기술적 표준이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당장(?) 신문사를 위협하진 못했습니다. 신문사들 입장에선 일단(?) 한숨 돌렸던 셈이지요.


<당시 RCA社의 팩스. 드럼통처럼 생긴 스캐너에 주목>

팩스에 쓰이는 송신장치와 기록장치는 여러 방식으로 제작을 시도해 왔다. 하나는 핀치식 장치 (Finch system)와 같은, 화학처리된 용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팩스의 철필이 종이를 긁으면서 밀어내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먹선을 그으면서 종이에 기록하는 방식인데, 이 먹선의 굵기와 크기는 신호의 진동의 세기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RCA社의 방식은) 송신기의 빔이 그림을 비추면, 그 빔의 반사광이 광전관 (Photo-electric Cell [英])을 비추면서 (글자와 그림이 똑같이) 복사된다.






이들의 라디오 신문수신기...아니, 팩스는 이러한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당시 사진이나 문서를 보내려면 봉투에 싸서 보내는 등 불편함이 있었던 걸 감안하면,

신문사들의 심장혈관을 쬬그라들게 만든 것만 빼고 (혹은 포함해서) 

획기적인 발명품이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습니다.


가까운 예로,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 사는 사람이 외국의 신문(종이)를 빨리 받아볼 수 있는 방법은 팩스로 받거나, 우편으로 며칠씩 걸려서 받거나 둘 중 하나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말이지요.







<1946년에 핀치가 개발한 칼라 팩스. 그만둬!!! 이미 신문사들의 멘탈은 0이야!!! (!?!?)>

여담이지만, 1946년에 핀치는 흑백 팩스를 넘어서

를 내보내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신문은 일단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그당시 신문사들이 걱정한 것과는 달리, 여적꺼정 잘 살아있거요. 그리고 팩스의 발명자들 - 그러니까, 알렉산더나, 핀치 등과 같은 당대의 사람들이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팩시밀리는 이당시보다 속도가 더 빠르며, 이를 넘어서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까짓(?) '라디오 신문 수신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모든 문명엔 뿌리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진리입니다. 암요.

※오늘의 브금 : Blue Moon (Frank Sinatra) - Fallout New Vegas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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