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헤타리아 동맹]어떤 혁명의 모순나선 부탄이 뭘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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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수준도 떨어지...아니, 시민의식 쩔어주는 궁민들은, 계속 질서정연하게 사셈ㅇㅇ
※그나저나, AKB48 중 몇마리가 ㅎㅌㄹㅇ 파다가 걸렸는데, 역시 요즘은 아이돌이 저학력에 무뇌면, 쪼인트가 존나 까여야함ㅇㅇ
tag : '시민의식'쩔어주는_돼지들은_그입_다물라, 그리고.연예인이랑_PD가_병신이면_저지랄남ㅇㅇ, 메이지다이쇼히로히토병신보단_부탄_국왕이_낫다_이_병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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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일본 부탄 국왕 모욕 논란
일본 온라인 상에서 ‘부탄 국왕 부부 모욕’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탄 국왕 부부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일본 후지TV의 생방송 프로그램인 ‘와랏테 이이토모! 망년회 특대호 2011’에선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부탄 국왕(31)과 제선 페마 왕비(21)를 패러디했다.일본의 유명 개그맨 게키단 히토리(劇團ひとり·34)와 걸그룹 AKB48의 멤버 아키모토 사야카(秋元才加·23)가 각각 왕추크 국왕과 페마 왕비로 변신했다.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두 사람은 코를 파거나 눈을 뒤집는 등의 몸짓과 표정 연기를 했다.
방송이 나간 뒤 일본 네티즌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나라의 국왕을 개그소재로 쓴 것 치곤 지나친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탄인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2ch 등 커뮤니티에는 “한 나라의 왕을 생방송에서 깎아내리다니 제정신인가” “국제적 망신” 이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부탄 국왕 모욕 문제’라는 이름으로 문제의 방송 장면이 유튜브에도 올라왔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비판이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도 제기했다. “충분히 용납할만한 수준의 개그”, “후지TV를 싫어하는 일부 우익 네티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란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 반응은 후지 TV와 게키단 히토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왕추크 부탄 국왕은 지난 2009년 2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왕’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평민 출신의 제선 페마와 결혼했다. 당시 외신들은 이 결혼을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에 빗대 ‘아시아판 로열 웨딩’이라고 보도했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등 일본 왕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방문 동안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 소마시를 찾는 등의 행동으로 일본 국민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한 일본 네티즌은 “11월 지진피해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부탄 국왕을 저렇게 모욕해도 되나. 외교전으로 비화할까 두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온라인 상에서 ‘부탄 국왕 부부 모욕’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탄 국왕 부부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일본 후지TV의 생방송 프로그램인 ‘와랏테 이이토모! 망년회 특대호 2011’에선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부탄 국왕(31)과 제선 페마 왕비(21)를 패러디했다.일본의 유명 개그맨 게키단 히토리(劇團ひとり·34)와 걸그룹 AKB48의 멤버 아키모토 사야카(秋元才加·23)가 각각 왕추크 국왕과 페마 왕비로 변신했다.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두 사람은 코를 파거나 눈을 뒤집는 등의 몸짓과 표정 연기를 했다.
방송이 나간 뒤 일본 네티즌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나라의 국왕을 개그소재로 쓴 것 치곤 지나친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탄인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2ch 등 커뮤니티에는 “한 나라의 왕을 생방송에서 깎아내리다니 제정신인가” “국제적 망신” 이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부탄 국왕 모욕 문제’라는 이름으로 문제의 방송 장면이 유튜브에도 올라왔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비판이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도 제기했다. “충분히 용납할만한 수준의 개그”, “후지TV를 싫어하는 일부 우익 네티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란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 반응은 후지 TV와 게키단 히토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왕추크 부탄 국왕은 지난 2009년 2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왕’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평민 출신의 제선 페마와 결혼했다. 당시 외신들은 이 결혼을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에 빗대 ‘아시아판 로열 웨딩’이라고 보도했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등 일본 왕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방문 동안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 소마시를 찾는 등의 행동으로 일본 국민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한 일본 네티즌은 “11월 지진피해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부탄 국왕을 저렇게 모욕해도 되나. 외교전으로 비화할까 두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단 이에 관해선,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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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부탄, 민주주의를 ‘하사’ 받다' - 100년 왕정 종지부 찍고 사상 첫 총선… 국왕 주도로 국민 설득 선거 치러
현재 유엔 가입국은 192개 나라다. 이들 나라에서는 매일같이 뉴스가 쏟아진다. 전쟁, 사건사고, 정상회담, 대선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뉴스는 대부분 강대국 소식을 중심으로, 그리고 보도하는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에는 부탄 왕국의 소식이 대서특필됐다. 신문 국제면의 톱기사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일부 신문에서는 1면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그것도 하루도 아니고 2,3일에 걸쳐 보도됐다.
●히말라야의 은둔 왕국
세계 지도를 보면 부탄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다. 땅덩이는 3만8000㎢. 남한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는 65만8000명. 서울 한 구(區)의 인구 수다.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뉴스는 부탄에서 총선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선거란 5일장처럼 흔한 것이어서 그 나라 국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100년 이상 끌어온 왕정의 종지부를 찍고 정권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부족 연합체로 흩어져 있던 부탄이 통일 왕조를 이룬 것은 1907년이다. 이후 왕의 세습을 거쳐 현재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미엘 왕추크(28·사진)에 이르렀다.
제국의 침략을 받거나 식민지를 경험한 여느 제3세계 국가와 달리 부탄 왕국은 지난 1세기 동안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을 걸어잠그고 철저히 자급자족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서구화·근대화의 물결 속에도 오랫동안 근대 문명을 거부해왔다. 이 나라에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들어간 것은 1999년이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최근까지 지속된 ‘은둔 왕국’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부탄은 전형적인 중세 사회였다. 포장도로도 전기도 병원도 없었다. 화폐 거래보다 물물교환 경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티베트와 같은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들이 하나둘 강대국의 지배에 놓이자,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인 부탄도 생존하기 위해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화·세계화의 거센 물결도 큰 부담이 됐다.
●위로부터의 개혁
부탄의 변화와 개혁은 위로부터 시작됐다. 2005년 4대 국왕 지그메 신계 왕추크는 2008년 민주적인 선거를 치른 뒤 하야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그는 예정보다 앞서 2006년 아들 남미엘 왕추크에게 왕위를 건네주고 물러났다. 지난주 선거는 선왕의 유지가 실현된 것이지만, 5대 왕 남미엘 왕추크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
남미엘 왕추크는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그는 부친의 근대화 정책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정치 철학은 부탄의 역사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면서 제한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불교 세례를 받고 자란 왕추크는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다”고 강조해왔다. 왕 자신이 대대로 내려오던 궁궐을 버리고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 정도로 검약을 실천하고 있다. 국민들도 국왕의 방침을 따르고 있다. 전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은 엄격히 금지된다. 공적인 모임에 참여할 때는 부탄의 전통의상을 입어야 한다. 외국 관광객들은 부탄에서 하루 200달러 이상을 써서는 안 된다. 부탄은 1인당 GNP가 1000달러도 되지 않은 빈국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부국이다. 부탄은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선정한 ‘세계 행복지수’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다.
●희한한 선거
역사상 처음 도입한 직접선거지만, 부탄 국민들의 선거를 대하는 태도는 심드렁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선거는 직접정치의 수단도,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축제도 아니었다. 유권자나 출마자 어느 누구도 원치 않은 선거였다. 그들이 선거에 참여한 것은 오로지 국왕의 ‘권유’ 때문이었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예스 짐바는 “선거를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왕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말했다. 유권자들도 되묻는다. “왜 우리가 변해야 하나”라고. 외신들은 “부탄 국민들은 내켜 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투표가 끝난 뒤 부탄 국민들은 저마다 깜짝 놀랐다. 민주주의를 하자는 선거였지만, 결과는 왕당파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47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왕당파인 부탄통일당이 44석을 차지하고, 국민민주당(PDP)은 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형식은 왕정을 종식하자는 선거지만, 내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주 총선으로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번 선거로 한 세기 이상 지속해온 부탄의 왕정 통치는 선거로 종지부를 찍는다. 부탄의 총선은 1960년대 세계에 문을 연 부탄이 취한 마지막 개혁이다. 부탄 왕국의 국민들은 한 개명군주에 의해 처음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맛보았다. 그러나 서구와 같은 민주정치로 가는 길은 더디고 힘겨워 보인다.
●국민행복을 위한 정치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한 부탄 국민에게 갑작스러운 정치 환경 변화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외견상 성공적이었다. 투표율이 80%에 달했고, 어떤 나라의 투표보다 질서정연했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들의 투표는 대다수가 국왕의 지휘 방침에 따른 맹목적인 행위였다.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왕정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민주주의’라는 좌표 없는 정치의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정치가 실현되고 입헌군주제가 자리를 잡아도 당분간 국민총행복을 높이려는 국정 철학은 고수될 것으로 보인다. 카르마 티템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전통과 문화, 환경의 조화를 꾀하는 우리의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선거로 부탄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새로운 정치 실험을 했다. 그러나 투쟁으로 ‘얻은’ 민주주의가 아닌 ‘주어진’ 민주주의 실험이기에 여전히 군주인 국왕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제부┃조운찬 기자 sidol@kyunghyang.com>
지난 24일 부탄 수도 팀부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지어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따로 줄을 선 게 이채롭다.
현재 유엔 가입국은 192개 나라다. 이들 나라에서는 매일같이 뉴스가 쏟아진다. 전쟁, 사건사고, 정상회담, 대선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뉴스는 대부분 강대국 소식을 중심으로, 그리고 보도하는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에는 부탄 왕국의 소식이 대서특필됐다. 신문 국제면의 톱기사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일부 신문에서는 1면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그것도 하루도 아니고 2,3일에 걸쳐 보도됐다.
●히말라야의 은둔 왕국
세계 지도를 보면 부탄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다. 땅덩이는 3만8000㎢. 남한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는 65만8000명. 서울 한 구(區)의 인구 수다.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뉴스는 부탄에서 총선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선거란 5일장처럼 흔한 것이어서 그 나라 국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100년 이상 끌어온 왕정의 종지부를 찍고 정권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부족 연합체로 흩어져 있던 부탄이 통일 왕조를 이룬 것은 1907년이다. 이후 왕의 세습을 거쳐 현재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미엘 왕추크(28·사진)에 이르렀다.
제국의 침략을 받거나 식민지를 경험한 여느 제3세계 국가와 달리 부탄 왕국은 지난 1세기 동안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을 걸어잠그고 철저히 자급자족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서구화·근대화의 물결 속에도 오랫동안 근대 문명을 거부해왔다. 이 나라에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들어간 것은 1999년이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최근까지 지속된 ‘은둔 왕국’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부탄은 전형적인 중세 사회였다. 포장도로도 전기도 병원도 없었다. 화폐 거래보다 물물교환 경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티베트와 같은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들이 하나둘 강대국의 지배에 놓이자,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인 부탄도 생존하기 위해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화·세계화의 거센 물결도 큰 부담이 됐다.
●위로부터의 개혁
부탄의 변화와 개혁은 위로부터 시작됐다. 2005년 4대 국왕 지그메 신계 왕추크는 2008년 민주적인 선거를 치른 뒤 하야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그는 예정보다 앞서 2006년 아들 남미엘 왕추크에게 왕위를 건네주고 물러났다. 지난주 선거는 선왕의 유지가 실현된 것이지만, 5대 왕 남미엘 왕추크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
남미엘 왕추크는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그는 부친의 근대화 정책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정치 철학은 부탄의 역사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면서 제한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불교 세례를 받고 자란 왕추크는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다”고 강조해왔다. 왕 자신이 대대로 내려오던 궁궐을 버리고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 정도로 검약을 실천하고 있다. 국민들도 국왕의 방침을 따르고 있다. 전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은 엄격히 금지된다. 공적인 모임에 참여할 때는 부탄의 전통의상을 입어야 한다. 외국 관광객들은 부탄에서 하루 200달러 이상을 써서는 안 된다. 부탄은 1인당 GNP가 1000달러도 되지 않은 빈국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부국이다. 부탄은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선정한 ‘세계 행복지수’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다.
●희한한 선거
역사상 처음 도입한 직접선거지만, 부탄 국민들의 선거를 대하는 태도는 심드렁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선거는 직접정치의 수단도,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축제도 아니었다. 유권자나 출마자 어느 누구도 원치 않은 선거였다. 그들이 선거에 참여한 것은 오로지 국왕의 ‘권유’ 때문이었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예스 짐바는 “선거를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왕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말했다. 유권자들도 되묻는다. “왜 우리가 변해야 하나”라고. 외신들은 “부탄 국민들은 내켜 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투표가 끝난 뒤 부탄 국민들은 저마다 깜짝 놀랐다. 민주주의를 하자는 선거였지만, 결과는 왕당파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47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왕당파인 부탄통일당이 44석을 차지하고, 국민민주당(PDP)은 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형식은 왕정을 종식하자는 선거지만, 내용은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주 총선으로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번 선거로 한 세기 이상 지속해온 부탄의 왕정 통치는 선거로 종지부를 찍는다. 부탄의 총선은 1960년대 세계에 문을 연 부탄이 취한 마지막 개혁이다. 부탄 왕국의 국민들은 한 개명군주에 의해 처음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맛보았다. 그러나 서구와 같은 민주정치로 가는 길은 더디고 힘겨워 보인다.
●국민행복을 위한 정치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한 부탄 국민에게 갑작스러운 정치 환경 변화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외견상 성공적이었다. 투표율이 80%에 달했고, 어떤 나라의 투표보다 질서정연했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들의 투표는 대다수가 국왕의 지휘 방침에 따른 맹목적인 행위였다.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왕정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민주주의’라는 좌표 없는 정치의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정치가 실현되고 입헌군주제가 자리를 잡아도 당분간 국민총행복을 높이려는 국정 철학은 고수될 것으로 보인다. 카르마 티템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전통과 문화, 환경의 조화를 꾀하는 우리의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선거로 부탄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새로운 정치 실험을 했다. 그러나 투쟁으로 ‘얻은’ 민주주의가 아닌 ‘주어진’ 민주주의 실험이기에 여전히 군주인 국왕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제부┃조운찬 기자 sidol@kyunghyang.com>
[서울신문] 부탄 민주주의 첫걸음 ‘성공적’
24일 치러진 부탄 총선에서 ‘평민의 당’이 ‘귀족당’을 누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출신의 유학파 지그미 틴리가 이끄는 부탄통일당(DPT)이 예상을 깨고 왕실 외척인 상가이 응게덥이 이끄는 국민민주당(PDP)에 압승을 거뒀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DPT, 총 47석중 44석 차지”
지난 1월 선거로 상원(25석)을 구성한 데 이어 이번에 하원(47석) 선거로 ‘은둔의 왕국’ 부탄은 100년 동안의 절대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 군주제 민주주의 국가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하게 됐다.
25일 BBC는 부탄 선거관리위원회 쿤장 왕디를 인용해 “DPT가 총47개 하원 의석 가운데 44개 의석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탄리는 부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왕정시절 두 차례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총선 압승으로 세번째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팔덴 체링 DPT 대변인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라면서 “국민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기뻐했다.DPT 후보 가운데 한명인 우엔 티셔링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이번 승리는 당이 아닌 국가의 승리”라고 진단했다.
반면 예상과는 반대로 참패한 PDP 총수인 응게덥은 일가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한 귀족이다. 그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역구에서도 탈락해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부탄 전문가들은 “탄리가 서민층과 지식인층의 표심을 사로잡은 것이 압승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총선은 부탄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있어 또하나의 전향적인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투표 참관인인 일본의 다키오 야마다도 “부탄 국민들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히말리아의 작은 나라인 부탄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전 국왕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기로 결정한 이후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피플파워에 의해 국왕이 축출된 이웃나라인 네팔과 달리 부탄은 국왕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소리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것이다.
●現 국왕은 국가원수 영향력 유지할 듯
전세계 독신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5걸에 드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28) 현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부탄 국민들은 급속한 변화를 염려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부탄은 1인당 GDP 1400달러의 가난한 나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국민들의 마음이 넉넉해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8위에 올랐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24일 치러진 부탄 총선에서 ‘평민의 당’이 ‘귀족당’을 누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출신의 유학파 지그미 틴리가 이끄는 부탄통일당(DPT)이 예상을 깨고 왕실 외척인 상가이 응게덥이 이끄는 국민민주당(PDP)에 압승을 거뒀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DPT, 총 47석중 44석 차지”
지난 1월 선거로 상원(25석)을 구성한 데 이어 이번에 하원(47석) 선거로 ‘은둔의 왕국’ 부탄은 100년 동안의 절대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 군주제 민주주의 국가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하게 됐다.
25일 BBC는 부탄 선거관리위원회 쿤장 왕디를 인용해 “DPT가 총47개 하원 의석 가운데 44개 의석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탄리는 부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왕정시절 두 차례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총선 압승으로 세번째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팔덴 체링 DPT 대변인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라면서 “국민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기뻐했다.DPT 후보 가운데 한명인 우엔 티셔링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이번 승리는 당이 아닌 국가의 승리”라고 진단했다.
반면 예상과는 반대로 참패한 PDP 총수인 응게덥은 일가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한 귀족이다. 그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역구에서도 탈락해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부탄 전문가들은 “탄리가 서민층과 지식인층의 표심을 사로잡은 것이 압승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총선은 부탄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있어 또하나의 전향적인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투표 참관인인 일본의 다키오 야마다도 “부탄 국민들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히말리아의 작은 나라인 부탄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전 국왕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기로 결정한 이후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피플파워에 의해 국왕이 축출된 이웃나라인 네팔과 달리 부탄은 국왕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소리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것이다.
●現 국왕은 국가원수 영향력 유지할 듯
전세계 독신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5걸에 드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28) 현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부탄 국민들은 급속한 변화를 염려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부탄은 1인당 GDP 1400달러의 가난한 나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국민들의 마음이 넉넉해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8위에 올랐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그러게, (스토리는 다 파악해서, 저쪽과는 거리가 몇백만광년이나 멀지마는) 내가 이 설정을 괜히 걸어놓은게 아님.>
짤곧내.
※그나저나, AKB48 중 몇마리가 ㅎㅌㄹㅇ 파다가 걸렸는데, 역시 요즘은 아이돌이 저학력에 무뇌면, 쪼인트가 존나 까여야함ㅇㅇ
tag : '시민의식'쩔어주는_돼지들은_그입_다물라, 그리고.연예인이랑_PD가_병신이면_저지랄남ㅇㅇ, 메이지다이쇼히로히토병신보단_부탄_국왕이_낫다_이_병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