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모 작업을 위한 자료용으로 가져온 타 블로그의 글입니다. 저작권은 원 포스팅 게시자에게 있으며, 원작자에 의해 문제가 지적될 시 자동폭파됩니다.
※일부 사진은, 원 포스팅의 사진에 다른 사진과 명칭을 덧붙였습니다. 덧붙인 명칭은 기울임꼴로, 일부 고유명칭은 괄호 안에 원어표기와 영문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일부 사진은, 원 포스팅의 사진에 다른 사진과 명칭을 덧붙였습니다. 덧붙인 명칭은 기울임꼴로, 일부 고유명칭은 괄호 안에 원어표기와 영문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밀덕은 무엇으로 사는가...] 구일본해군 정규 항공모함, 그에 대한 헛소리.
[1. 개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스트 유틀란트라는 유행을 타고, 전세계 전함과 순양전함은 전훈에 따라 거의 동일한 개량과 신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포의 대구경화, 집중방어구조, 데미지컨트롤, 내부구조방어력 향상, 수평방어구조의 강화등등. 부정할 수 없는 전쟁의 교훈은 전함/순양전함 진화의 궁극을 시사해주었지요.
그러나 삼국삼색. 영. 미. 일의 정규항공모함들은 저마다 성격이 달랐습니다. 항공모함이라는 새로운 함종을 어떻게 써먹을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저마다의 꿍꿍이 나름이었으니 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항공모함에게 그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했고. 태어난지 30년도 채지나지 않은, 이 미지의 함종은 여전히 아메바처럼 변신의 변신을 거듭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항공모함이라는 이 생소한 함종은 수갈래 진화의 길을 밟으며 착실히 제왕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두꺼운 장갑, 강력한 포격능력으로 해상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전함은. 어찌보면 경순양함 따위보다도 약해보이는 항공모함에게 주도자의 자리를 내주게 될 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공모함이 공전절후의 강력함을 처음부터 가진 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항모에겐 전함만한 장갑도, 포격력도 없었지만,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해군관계자들이 보기에 우편이나 나르고, 사람이나 나르는...간단히 말해 기계로 만든 전서구, 부자도련님의 장난감에 불과하던 비행기. 이게 나중엔 수백킬로그램의 폭탄을 수배길로미터 밖으로 나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요. 이렇든 막강한 거포와 두꺼운 장갑도 비행기라는 물건 앞에선 빛이 바랬고, 항모는 궁극적으로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운명이었더랬지요.
그리고 이런 제왕의 기질을 제일 먼저,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것은 신흥 열강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끝내 제왕이 될 재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항모라는 걸 모방했지만, 그걸 제대로 써먹을 방법, 그리고 그 진가까지 모방하진 못했던 것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모방만으론 창조를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일본의 한계였지요.
[2. 열도의 공모(空母) 태동.]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CV-1 랭글리 (USS Langley [英]), 영국은 HMS 아거스 (HMS Argus I49 [英])를 이용해 활발한 연구활동과 시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함대의 주력은 전함이라는 시각은 여전했지만. 세계의 트랜드를 주도하던 미/영의 선구자적인 장교들은 이 혁신적인 신형 함종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특히, 수상 발착항공기보다 육상 발착항공기가 더 높은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훈을 바탕으로 비행갑판을 마련해 육상용 항공기를 수상선박에서 운용한다는 개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이렇듯 영국의 기술적 지원을 받으며 건조된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는 보시다시피, RN의 어느 녀석이랑 많이 닮았더랬지요. 아니 뭐 대놓고 말하자면 아거스의 카피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모습은. 초창기 일본 항공모함의 시초와 기술전 연원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후발주자인만큼 선진국 미국과 영국을 보고 배우는덴 열심이었던 일본은 1922년 호쇼 (鳳翔 [日] IJN Hosho [英]) 를 실전배치시킴으로서 본격적으로 항공모함이란 업종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은 가까스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항공모함이란 함종을 손에 얻었습니다.
하지만 호쇼를 얻은 후에도 일본은 항공모함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아마기급 순양전함과 카가급 고속전함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들을 얻게 된다면 일본은 88함대의 완성과 더불어 미영과도 대등한 전력을 구축하게 될 터였습니다.(물론 이건 일본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예나 지금이나 히키코모리같은 습성은 여전하지요.ㅡㅡ 어느 정도 내적 자신감이 붙으면 더이상 외부의 사정엔 둔감해지지요.)
하지만 88함대를 구상하던 해군의 실세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이 항공모함, 정확히는 공모를 확충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계기가 나타나게 되죠. 바로 군축조약 (The Washington Naval Conference [英] : 1921 ~ 1922) 입니다. 사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열강들은 어떻게 해서든 숨가쁜 군비경쟁을 종식시켜야 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경제, 불만에 가득찬 국민들은 언제든 정권을 갈아치울 기세였으니까요.
<카가급 고속전함. 여전히 대영제국 순양전함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
<아마기급 순양전함. 모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해군군축조약}
황국신민이라면 마른 주머니를 쥐어짜서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믿는 일본의 돌대가리 군부강경파들에겐 저~언~혀 상관없는 개소리였겠지만. 어쨋든 숨이 가쁜 열강들은 일본에게 꽤나 큰 양보를 했습니다. 물론 만족이란 걸 모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겐 현실이 보이지 않았겠죠. 어떤 체제하에서의 양보라는 것은 그 체제에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인자 타이틀을 쥐고나서도 국력보다 더한 발언권을 얻고자 했던 일본의 모습은 좋은 말로 야심이 강하고, 나쁜 말로 주제를 모르는 것이었죠.(하기야 늘 전쟁에 승리만 해서 콧대가 궤도권을 돌파해 안드로메다에 갔으니.)
이렇게 전후 특단의 군축조약으로 인해 삼인자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차지한 일본은 대단히 크나큰 이득을 얻은 셈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강경파 군부장교들은 군축조약으로 일본이 큰 손해를 보았다며 떠들어댔지만. 실상 일본 역시 과도한 건함경쟁으로 비틀비틀거리고 있었고, 설사 군축조약 없이 레이스를 해서 88함대를 완성하더라도. 미영은 일본을 능가하는 전함을 만들수 있는 능력은 물론 자본과 공업력까지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N-3프로젝트. 18인치 9문. 측면 12인치 갑판 6인치 이상의 강무장, 중장갑 컨셉이었지요. 2연장 포탑을 5문이나 늘어놓는, 그래서 측면 '10인치'라는 비루한 디자인과는 격이 다른 품격높은 디자인이지요.>
오히려 군축조약은 미국와 영국의 함대증강을 묶어놓아 일본이 1~2위에 크게 근접한 3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었지요.(동시대 카가나 아마기가 절헌 굇수들과 수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었으니 외려 다행이지요.) 이렇듯 미일의 양보 속에 큰 이익을 얻은 일본이었지만, 국민들 살림살이엔 전혀 상관없는 거함거포 밀덕후들은 씩씩거릴 따름이었죠.
결국 강제적으로 거함거포 밀덕후들을 속박한 덕에. 일본은 다행인지 천행인지 항공모함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폐기해야 할 순양전함과 고속전함을 항공모함으로 반강제 개장하게 되니까 말이죠. 뿐만 아니라 해군조약에 따른, 필연적으로 미영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함대를 강화하고자 하면 싫어도 항모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함과 순양전함, 중순양함과 경순양함등의 정석승부를 봐선 절대로 일본이 미영 어느 한 나라도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진 것이 해군조약이니까요.
[3. 일본식 항모의 태동]
비록 최초의 항공모함은 호쇼로 시작하였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영국의 기술을 빌려 장래 등장할 항공모함이란 함종을 이해하고 시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일본이 가진 전훈과 교리, 경제적, 공업적 바탕하에 일본식 색채를 입힌 최초의 항공모함은 해군조약에 의해 폐기해야할 전함/순양전함의 선체를 이용한 개장 항공모함들이었습니다.
바로 아카기 (赤城 [日] IJN Akagi [英]) 와 카가 (加賀 [日] IJN Kaga [英]) 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항모란 걸 손에 쥐어보긴 했는데, 미영이 항모를 모르는데, 일본이 항모란 걸 알 까닭이 없었지요.
개장은 하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 모르니, 어떻게 만들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영국의 커레이져스로부터 다층갑판 아이디어를 얻었고, 선수부에 무장을 해 경순양함 정도는 찜쪄먹을 수 잇는 항공순양함 컨셉을 잡습니다. 그 결과 특징적인 트리플 덱, 선수부 강무장의 항모가 나타나게 되지요.
그런데 동시기 미국이란 나라가 선택한 모습은 영국과 일본이 택한 그것과는 상당히 상이한 모습이었죠.
물론 8인치 건을 장비해 순양함과 동급의 화력을 구비하는 등 영국과 일본의 사상과 동일한 면도 있지만, 단층 대형 격납고, 전노선개통 단일항공갑판, 대형아일랜드, 최대한 높이 빼올린 대형 연돌은 미국만이 선택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영국/일본 시각에서 보자면 이런 미국의 선택은 참 바보같은 선택이었죠.
높고 넓은 단층 격납고는 많은 비행기를 수납하지 못할 터였고, 트인 항공갑판은 항공기가 착함하기엔 좋지만 당시 항공기가 이륙하기엔 지나치게 넓고 길었습니다. 거기에 1층 뿐이니 발함하는 항공기도 다층갑판에 비하면 적을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쓸데 없는 공간배분이었죠. 3층 비행갑판이라면 미국항모가 하나의 항공갑판에서 1대를 날릴 때 3대를 날릴 수 있었고. 2층식 격납고는 미국보다 2배많은 항공기를 적재하게 해 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본은 처음으로 제 손, 제 머리를 통해 알게 되었지요. 커레이져스 이후 항공모함의 장갑화를 선택한 영국 덕택에 롤 모델이 없던 일본은 모두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이런 과정 끝에야 과도기적인 아카기와 카가를 쓸만하게 개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미국이 1925년 선택하고 확립한 렉싱턴급의 그것을 상당수 차용하게 되버리죠.
물론 미봉책에 불과했지만요. 우선, 다층갑판은 결과론적으로 실패작임이 드러났지요. 항공기 성능이 일신되고,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요구하는 이착륙 갑판길이가 길어만 졌고, 더군다나 착함 갑판은 1매뿐이니 여러 문제가 드러나 2층과 3층갑판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었지요.
결국은 미국이 10년도 전에 택한 전노선개통 갑판을 채용, 항공갑판의 숫자는 하나로 통일.
쓸때 없이 길다고만 여겨지던 항공갑판을 길게 함수부까지 연장하고, 건현의 스타보드등에 다수의 대공병장을 추가하게 되지요. 여기에 필요없다 여기던 아일랜드 역시 함의 조함과 컨트롤 부분에서 필요하다 여겨져 신설하게 되고요.
1. 복층식 격납고
2. 폐쇄식 격납고
3. 소형 아일랜드
4. 측면배치 연돌
개장 항모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동시기 동일한 목재 항공갑판을 채용한 미국식 항모와는 다른 식으로 살아남게 되지요.
1. 단층식 대형 격납고
2. 개방형 격납고
3. 대형 아일랜드
4. 대형 수직연돌
[4. 일본류의 완성 히류와 쇼가쿠]
영국을 참고해 개장한 카가와 아카기를 건조한 일본은 함재기 운용 경험이 쌓이고, 이들 함재기 운용에 따른 피드백을 쌓아올려. 항공모함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정립해 나가게 되죠. 그 결과 여러 난잡한 개선사안을 하나씩 만족시켜. 마침내 최초의 정규항공모함을 건조하게 됩니다.
카가와 아카기의 단점만을 골라잡아 건조한 문제아 이른 바 빌어먹을 '류조'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덕이었죠.-_-;;
<격납고가 너무 크고 높아서, 능파성이나 수밀성, 무게중심문제가 다발. 여기에 파도 치면 톡하고 깨질 것 같은 구조강도. 딱봐도 불안하게 생겨먹었습니다. 물에 잠긴 부분보다 쌓아올린 게 더 크니...너도 참 후우...>
이렇게 남들도 하는 삽질이라지만. 남보다 1~2번 삽질을 더한 끝에야 본격 정규 항공모함 '소류 (蒼龍 [日] IJN Soryu [英])'를 런칭시켰습니다.
비록 해군조약의 틀에 묶여 배수량문제로 여러 성능이 제한되었지만. 그래도 소류는 일본식 항모의 전형을 보여주지요. 복층식 폐쇄 격납고, 고속대형기관, 함수와 함미를 통째로 덮는 긴 항공갑판. 카가와 아카기가 일본식 1세대 항모라면 소류는 비로소 2세대라는 신세대 항모로서 태어난 것이지요.(그 중간 류조는 삽질의, 삽질에 의한, 삽질을 위한 녀석일뿐.)
그리고 이 소류의 단점을 완전히 제거하고 태어난 것이 바로 히류 (飛龍 [日] IJN Hiryu [英]) 입니다.
이를테면 소류가 일본의 레인저라면 히류는 바로 일본의 요크타운에 비견할만한 항모인 것이지요.
소류의 여러부분을 개량하고, 개선해 한층 더 여유있는 배수량을 이용해 건조한 히류는 2층 격납고를 가지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무게중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배수량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훨씬 대형인 개장항모 아카기 카가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항모를 운영함에 있어 가장 유념해둘 요소가 '선빵이 최고다'라는 걸 기억한다면. 선빵에 써먹을 항공기를 더 빨리, 많이 날릴 수 있는 히류야 말로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항모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종의 전형을 만들어두어 이후로도 그 특징들이 주욱 이어지는 미국항모들과는 달리 아직도 일본에 있어 항모의 전형이란 미완성이었습니다. 즉, 해결못한 미결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건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히류도 여전해서. 히류의 확대개량판인 쇼가쿠 (翔鶴 [日] IJN Shokaku [英]) 가 등장하게 될 때 여러 변화가 생깁니다.
하지만 히류의 완성도 있는 설계는 매우 우수해서. 히류를 알면 이후 등장하는 일본의 모든 정규항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쇼가쿠, 운류 (雲龍 [日] IJN Unryu [英]) 가 히류의 핏줄을 이어받았고, 다른 다이호 (大鳳 [日] IJN Taiho [英])의 건조에도 히류의 설계가 쓰였고, 시나노 역시 히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에식스가 요크타운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걸 기억한다면. 히류야 말로 일본의 요크타운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리고 2차세계대전당시 그 완성도, 활용성, 위력, 전과 모두에서 태평양/대서양 최강자인 에식스와 유일하게 대항이 가능한 쌍벽 쇼가쿠가 일본식 항모의 궁극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야 말로 일본 최고의 항모를 지향하고 설계된 이 신예 항모는 모든 면에서 이전 항모들을 능가했습니다.
하지만,어디까지나 대항이 가능하고 쌍벽을 이룰만한 것이지. 에식스급을 능가할 순 없었지요. 일본의 제한된 공업능력과 과학기술력. 그로 인한 항공기 능력의 제한, 그리고 일본항모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한 여러 기술적 특징에 의해 일본제/식 항모들은 미국제 항모보다 항상 그 능력이 떨어지거나, 심각한 단점들을 포용하고 있었습니다.
[5. 총평]
비교를 하고 싶진 않지만. 비교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지요.ㅡㅡ
전반적으로 일본제 항모들은 해군조약을 적당히, 파격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몰래 쌩까고 만들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미국제 항모보다 덩치가 크고, 장갑이나 방어력설계시 한계가 덜했습니다. 배수량이나 조약의 제한을 적당히 까고 만들었기 때문에 장갑을 달아도 1인치라도 더 두꺼운 것이 일본제였고, 수밀구역이나 방뢰공간 역시 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해군군축조약을 벗어나 미국이 작심하고 만든 녀석이 에식스 클래스라는 것. 그리고 이 에식스가 당시 일본제 항모를 모두 통털어도 능가할 녀석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세상은 정직한 놈은 손해보는 것입니다.(물론 그런 바보같은 우직함때문에 요크타운이란 걸작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설계를 바탕으로 태평양 최강 괴수 에식스가 나왔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제와 일본제를 가늠짓는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라. 결언]
나름대로의 장르를 개척한 일본식 항모지만. 근본적으로 내재된 단점을 해결할 의지도, 기술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복층식 격납고는 부족한 함재기 적재수를 늘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폐쇄형 격납고 역시 복층식으로 인한 격납고 구조지탱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 낮은 격납고 높이로 인한 함재의 사이즈 제한. 중량배분 문제로 인한 개량의 난이도 증대. 함재기 이착함 속도의 저하등등등.
모방으로 시작해, 충실한 모방으로 빛을 봤지만. 모방이 아닌 창조의 차원으로 넘어갔을 땐. 다시금 히키코모리로 돌아간 일본해군의 항공모함군은...
영영 멸종해버렸지요.
(장갑갑판의 개념을 남긴 영국항모, 현재 항모 그 자체인 미국제 항모등등. 일본제 항모는 그 어떠한 유전적 특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만. 그것이 패자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기술적, 설계적으로 봤을 때 도퇴됬어야만 했기 때문이란 것은 그저 슬플 따름이죠.)
[6. 추가.]
물론 완소 미국 헉헉거리는 제 헛소리를 보시며.
'덜허운 양키노무 쉐액기'
미국제보단 일본제가 더 덩치가 크고, 고성능이다! 나의 완소! 세계최대 시나노를 중얼거리는 분도 계시겠지만...그 경우.
닥치고 미드웨이를 보시면 됩니다.
1945년 10월에 실전배치된 최신예 항모.
영국제 장갑항모에 흥미로움을 느껴 많은 부분 영국제의 컨셉과 엣센스를 받아들인 항모되겠습니다. 만재 59,000톤이라는 연합군 최대의 덩치. 295미터라는 엄청난 갑판길이 전장 40미터의 여유로움. 여기에 5"/54cal 18문, 40mm 84문, 20mm 68문.등으로 대공병장으로 떡칠을 했고, 33노트란 엄청난 고속항주능력을 보유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그 덩치로 몸소 장갑을 바르니. 영국제 장갑항모를 능가하는 방탄성능을 보유했습니다. 무려 3.5인치 장갑비행갑판을 채용하고, 그 아래에 2인치 주장갑을 쳤습니다. 코닝타워엔 6.5인치 장갑을 치고 수선하 방어구역은 5개층 총91mm. 5미터 폭의 방뢰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어뢰 3~4발로는 어림도 없고, 500파운드 폭탄으로 이 녀석을 어찌해보겠다는 기대감은 접어야겠죠.
무엇보다 통상 137기의 탑재기는 가히 절망이죠. 전쟁후반기 에식스처럼 전투기 위주에 노천계지까지 끌어쓴다면 150기 이상의 함재기를 보유하는 공전절후의 괴수스러움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1. 개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스트 유틀란트라는 유행을 타고, 전세계 전함과 순양전함은 전훈에 따라 거의 동일한 개량과 신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포의 대구경화, 집중방어구조, 데미지컨트롤, 내부구조방어력 향상, 수평방어구조의 강화등등. 부정할 수 없는 전쟁의 교훈은 전함/순양전함 진화의 궁극을 시사해주었지요.
그러나 삼국삼색. 영. 미. 일의 정규항공모함들은 저마다 성격이 달랐습니다. 항공모함이라는 새로운 함종을 어떻게 써먹을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저마다의 꿍꿍이 나름이었으니 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항공모함에게 그 어떠한 교훈도 주지 못했고. 태어난지 30년도 채지나지 않은, 이 미지의 함종은 여전히 아메바처럼 변신의 변신을 거듭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항공모함이라는 이 생소한 함종은 수갈래 진화의 길을 밟으며 착실히 제왕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두꺼운 장갑, 강력한 포격능력으로 해상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전함은. 어찌보면 경순양함 따위보다도 약해보이는 항공모함에게 주도자의 자리를 내주게 될 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공모함이 공전절후의 강력함을 처음부터 가진 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항모에겐 전함만한 장갑도, 포격력도 없었지만,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해군관계자들이 보기에 우편이나 나르고, 사람이나 나르는...간단히 말해 기계로 만든 전서구, 부자도련님의 장난감에 불과하던 비행기. 이게 나중엔 수백킬로그램의 폭탄을 수배길로미터 밖으로 나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요. 이렇든 막강한 거포와 두꺼운 장갑도 비행기라는 물건 앞에선 빛이 바랬고, 항모는 궁극적으로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운명이었더랬지요.
그리고 이런 제왕의 기질을 제일 먼저,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것은 신흥 열강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끝내 제왕이 될 재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항모라는 걸 모방했지만, 그걸 제대로 써먹을 방법, 그리고 그 진가까지 모방하진 못했던 것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모방만으론 창조를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일본의 한계였지요.
[2. 열도의 공모(空母) 태동.]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CV-1 랭글리 (USS Langley [英]), 영국은 HMS 아거스 (HMS Argus I49 [英])를 이용해 활발한 연구활동과 시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함대의 주력은 전함이라는 시각은 여전했지만. 세계의 트랜드를 주도하던 미/영의 선구자적인 장교들은 이 혁신적인 신형 함종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특히, 수상 발착항공기보다 육상 발착항공기가 더 높은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훈을 바탕으로 비행갑판을 마련해 육상용 항공기를 수상선박에서 운용한다는 개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이렇듯 영국의 기술적 지원을 받으며 건조된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는 보시다시피, RN의 어느 녀석이랑 많이 닮았더랬지요. 아니 뭐 대놓고 말하자면 아거스의 카피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모습은. 초창기 일본 항공모함의 시초와 기술전 연원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후발주자인만큼 선진국 미국과 영국을 보고 배우는덴 열심이었던 일본은 1922년 호쇼 (鳳翔 [日] IJN Hosho [英]) 를 실전배치시킴으로서 본격적으로 항공모함이란 업종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은 가까스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항공모함이란 함종을 손에 얻었습니다.
하지만 호쇼를 얻은 후에도 일본은 항공모함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아마기급 순양전함과 카가급 고속전함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들을 얻게 된다면 일본은 88함대의 완성과 더불어 미영과도 대등한 전력을 구축하게 될 터였습니다.(물론 이건 일본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예나 지금이나 히키코모리같은 습성은 여전하지요.ㅡㅡ 어느 정도 내적 자신감이 붙으면 더이상 외부의 사정엔 둔감해지지요.)
하지만 88함대를 구상하던 해군의 실세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이 항공모함, 정확히는 공모를 확충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계기가 나타나게 되죠. 바로 군축조약 (The Washington Naval Conference [英] : 1921 ~ 1922) 입니다. 사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열강들은 어떻게 해서든 숨가쁜 군비경쟁을 종식시켜야 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경제, 불만에 가득찬 국민들은 언제든 정권을 갈아치울 기세였으니까요.
<카가급 고속전함. 여전히 대영제국 순양전함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
<아마기급 순양전함. 모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해군군축조약}
황국신민이라면 마른 주머니를 쥐어짜서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믿는 일본의 돌대가리 군부강경파들에겐 저~언~혀 상관없는 개소리였겠지만. 어쨋든 숨이 가쁜 열강들은 일본에게 꽤나 큰 양보를 했습니다. 물론 만족이란 걸 모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겐 현실이 보이지 않았겠죠. 어떤 체제하에서의 양보라는 것은 그 체제에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인자 타이틀을 쥐고나서도 국력보다 더한 발언권을 얻고자 했던 일본의 모습은 좋은 말로 야심이 강하고, 나쁜 말로 주제를 모르는 것이었죠.(하기야 늘 전쟁에 승리만 해서 콧대가 궤도권을 돌파해 안드로메다에 갔으니.)
이렇게 전후 특단의 군축조약으로 인해 삼인자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차지한 일본은 대단히 크나큰 이득을 얻은 셈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강경파 군부장교들은 군축조약으로 일본이 큰 손해를 보았다며 떠들어댔지만. 실상 일본 역시 과도한 건함경쟁으로 비틀비틀거리고 있었고, 설사 군축조약 없이 레이스를 해서 88함대를 완성하더라도. 미영은 일본을 능가하는 전함을 만들수 있는 능력은 물론 자본과 공업력까지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N-3프로젝트. 18인치 9문. 측면 12인치 갑판 6인치 이상의 강무장, 중장갑 컨셉이었지요. 2연장 포탑을 5문이나 늘어놓는, 그래서 측면 '10인치'라는 비루한 디자인과는 격이 다른 품격높은 디자인이지요.>
오히려 군축조약은 미국와 영국의 함대증강을 묶어놓아 일본이 1~2위에 크게 근접한 3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었지요.(동시대 카가나 아마기가 절헌 굇수들과 수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었으니 외려 다행이지요.) 이렇듯 미일의 양보 속에 큰 이익을 얻은 일본이었지만, 국민들 살림살이엔 전혀 상관없는 거함거포 밀덕후들은 씩씩거릴 따름이었죠.
결국 강제적으로 거함거포 밀덕후들을 속박한 덕에. 일본은 다행인지 천행인지 항공모함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폐기해야 할 순양전함과 고속전함을 항공모함으로 반강제 개장하게 되니까 말이죠. 뿐만 아니라 해군조약에 따른, 필연적으로 미영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함대를 강화하고자 하면 싫어도 항모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함과 순양전함, 중순양함과 경순양함등의 정석승부를 봐선 절대로 일본이 미영 어느 한 나라도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진 것이 해군조약이니까요.
[3. 일본식 항모의 태동]
비록 최초의 항공모함은 호쇼로 시작하였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영국의 기술을 빌려 장래 등장할 항공모함이란 함종을 이해하고 시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일본이 가진 전훈과 교리, 경제적, 공업적 바탕하에 일본식 색채를 입힌 최초의 항공모함은 해군조약에 의해 폐기해야할 전함/순양전함의 선체를 이용한 개장 항공모함들이었습니다.
바로 아카기 (赤城 [日] IJN Akagi [英]) 와 카가 (加賀 [日] IJN Kaga [英]) 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항모란 걸 손에 쥐어보긴 했는데, 미영이 항모를 모르는데, 일본이 항모란 걸 알 까닭이 없었지요.
개장은 하기로 했는데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 모르니, 어떻게 만들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영국의 커레이져스로부터 다층갑판 아이디어를 얻었고, 선수부에 무장을 해 경순양함 정도는 찜쪄먹을 수 잇는 항공순양함 컨셉을 잡습니다. 그 결과 특징적인 트리플 덱, 선수부 강무장의 항모가 나타나게 되지요.
그런데 동시기 미국이란 나라가 선택한 모습은 영국과 일본이 택한 그것과는 상당히 상이한 모습이었죠.
물론 8인치 건을 장비해 순양함과 동급의 화력을 구비하는 등 영국과 일본의 사상과 동일한 면도 있지만, 단층 대형 격납고, 전노선개통 단일항공갑판, 대형아일랜드, 최대한 높이 빼올린 대형 연돌은 미국만이 선택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영국/일본 시각에서 보자면 이런 미국의 선택은 참 바보같은 선택이었죠.
높고 넓은 단층 격납고는 많은 비행기를 수납하지 못할 터였고, 트인 항공갑판은 항공기가 착함하기엔 좋지만 당시 항공기가 이륙하기엔 지나치게 넓고 길었습니다. 거기에 1층 뿐이니 발함하는 항공기도 다층갑판에 비하면 적을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쓸데 없는 공간배분이었죠. 3층 비행갑판이라면 미국항모가 하나의 항공갑판에서 1대를 날릴 때 3대를 날릴 수 있었고. 2층식 격납고는 미국보다 2배많은 항공기를 적재하게 해 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본은 처음으로 제 손, 제 머리를 통해 알게 되었지요. 커레이져스 이후 항공모함의 장갑화를 선택한 영국 덕택에 롤 모델이 없던 일본은 모두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이런 과정 끝에야 과도기적인 아카기와 카가를 쓸만하게 개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미국이 1925년 선택하고 확립한 렉싱턴급의 그것을 상당수 차용하게 되버리죠.
물론 미봉책에 불과했지만요. 우선, 다층갑판은 결과론적으로 실패작임이 드러났지요. 항공기 성능이 일신되고,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요구하는 이착륙 갑판길이가 길어만 졌고, 더군다나 착함 갑판은 1매뿐이니 여러 문제가 드러나 2층과 3층갑판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었지요.
결국은 미국이 10년도 전에 택한 전노선개통 갑판을 채용, 항공갑판의 숫자는 하나로 통일.
쓸때 없이 길다고만 여겨지던 항공갑판을 길게 함수부까지 연장하고, 건현의 스타보드등에 다수의 대공병장을 추가하게 되지요. 여기에 필요없다 여기던 아일랜드 역시 함의 조함과 컨트롤 부분에서 필요하다 여겨져 신설하게 되고요.
1. 복층식 격납고
2. 폐쇄식 격납고
3. 소형 아일랜드
4. 측면배치 연돌
개장 항모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동시기 동일한 목재 항공갑판을 채용한 미국식 항모와는 다른 식으로 살아남게 되지요.
1. 단층식 대형 격납고
2. 개방형 격납고
3. 대형 아일랜드
4. 대형 수직연돌
{가. 복층식 격납고/폐쇄식 격납고}
하지만 이미 완성되어 그 후세들에게 그 특징을 유전시켜준 미국식 항모들과는 달리 일본식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었지요.
자랑으로 여기던 듀얼 행거(복층 격납고)는 폐쇄식 격납고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단초를 마련해주었고, 거기에 함의 무게중심을 올려놔 경심문제를 남겨주게 되었지요
반면 미국식 격납고는 높은 전고를 가진다 해도 단층이었기에 함의 무게중심 불안을 겪지 않았고, 그 윗부분에 목재 항공갑판등을 덮고 있었으니 바로 위에 또다른 격납고와 항공갑판을 이고 있어야 하는 일본식 복층보단 구조강도문제에서도 자유로웠습니다...(4함대 사건의 류조 (龍驤 [日] IJN Ryujo [英])가 중파되는 것 역시 불안한 경심과 구조강도 문제가 없다곤 말 못하지요.)
결국 복층격납고는 구조적 불안정성과 이로 인한 폐쇄식 구조를 채용했고, 미국식 단층과는 달리 함의 공간을 효율성 있게 점유하는 것이 어려워 함재기 보관에도 불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로 1층을 올리면 되는 미국과는 달리 1층과 2층의 항공기를 하나의 엘리베이터로 올려보내야 한다는 구조 역시 이착함에 있어 여전히 불리한 요소였지요. 뿐만 아니라 개수를 해도 격납고의 전고를 높일 수가 없으니 날이 갈수록 대형화되는 함재기들을 정비,수납하는데 불리했지요.
복층 갑판은 발착 속도는 물론, 정비와 보관도 불리했고. 피탄시 데미지 컨트롤도 어려웠고.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까닭에 기계적, 구조적 문제도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되어 그 후세들에게 그 특징을 유전시켜준 미국식 항모들과는 달리 일본식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었지요.
자랑으로 여기던 듀얼 행거(복층 격납고)는 폐쇄식 격납고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단초를 마련해주었고, 거기에 함의 무게중심을 올려놔 경심문제를 남겨주게 되었지요
반면 미국식 격납고는 높은 전고를 가진다 해도 단층이었기에 함의 무게중심 불안을 겪지 않았고, 그 윗부분에 목재 항공갑판등을 덮고 있었으니 바로 위에 또다른 격납고와 항공갑판을 이고 있어야 하는 일본식 복층보단 구조강도문제에서도 자유로웠습니다...(4함대 사건의 류조 (龍驤 [日] IJN Ryujo [英])가 중파되는 것 역시 불안한 경심과 구조강도 문제가 없다곤 말 못하지요.)
결국 복층격납고는 구조적 불안정성과 이로 인한 폐쇄식 구조를 채용했고, 미국식 단층과는 달리 함의 공간을 효율성 있게 점유하는 것이 어려워 함재기 보관에도 불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로 1층을 올리면 되는 미국과는 달리 1층과 2층의 항공기를 하나의 엘리베이터로 올려보내야 한다는 구조 역시 이착함에 있어 여전히 불리한 요소였지요. 뿐만 아니라 개수를 해도 격납고의 전고를 높일 수가 없으니 날이 갈수록 대형화되는 함재기들을 정비,수납하는데 불리했지요.
복층 갑판은 발착 속도는 물론, 정비와 보관도 불리했고. 피탄시 데미지 컨트롤도 어려웠고.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까닭에 기계적, 구조적 문제도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 아일랜드/연돌}
일본은 항모를 개장하고, 개조할 때도 난기류에 따른 문제를 세심하게 신경썼습니다. 이 덕에 측면/후미(이후 측면) 연돌을 채용했고, 아일랜드 역시 측면연돌의 정반대에 배치시켰지요. 하지만, 측면에 배연구를 설치하면 뜨거운 배연가스가 바닷물에 닿아 식으며 난기류 문제를 경감시켜 줄 것이라 생각한 설계는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측면연돌은 일부 선실을 심각하게 달궜고, 중량배분은 물론 공간활용에도 불리했습니다. 거기에 식은 가스라도 여전히 뜨겁기는 매한가지라 난기류를 발생시키는 건 여전한 문제였습니다. 거기에 차라리 연돌을 위로 높게 뽑아올려 이착함하는 항공기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배제한 미국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측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배기개스가 비행기의 발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더운 배기개스가 항공갑판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는 소립니다.)
거기에 연돌과는 반대에 아일랜드를 장비한 결과, 우현에서 올라온 개스로 인해 좌측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항공기는 좌현의 아일랜드와 충돌할 수도 있었죠. 결국 일본 파일럿들은 공공연히 불만을 토해냈습니다. 실제적인 실험과 데이터 없이 기술자의 현실성 없는 뇌내망상, 해군부의 경험부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야 미영도 별다를 건 없었지만...
일본의 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1935년 개장까지 질질 끌고 갔다는 겁니다.
(니들이 삽푸는 동안 미국은 이런저런 삽질은 끝내고 명품 항모 요크타운이 나왔단 말이다아!!!)
거기에 일본항모의 전형적인 특징은 우현 전방 소형 아일랜드의 경우도...
내내 지적받는 이야기지만. 단층식 격납고로 인해 무게중심이 비교적 잘잡혀 있는 미국항모는 높고 큰 아일랜드를 설비하는 게 가능했지만. 일본은 복층식 격납고와 이로 인한 높은 무게중심과 벨런스 웨이트 문제로 내내 소형함교만을 설치하게 되죠.
그 결과 함의 조함은 관두고, 작전지휘에 여러 문제점을 도출하게 됩니다. 함의 전체적인 모습을 관찰하고 함장 이하 여러 스태프들이 함을 관리하는 아일랜드의 존재는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죠. 함의 지휘는 물론 함재기의 이착함에도 큰 요소를 차지하기 때문에. 아일랜드란 물건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남아 있고, 함재의 이착함, 갑판계류, 격납고 이송등을 관리하는 AirBoss등이 아일랜드에 하루 종일 상주합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식 대형아일랜드는 일본보다 대형이기에 함재기에 주는 악영향이 더 커보이지만. 함재기 운용과 통제, 관제는 물론 함의 조함과 데미지컨트롤에서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에 위치한 함장은 모든 것이 구비된 환경하에서 정확한 대수상, 대공중, 함내부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일랜드엔 MK.51같은 자동사격관제장비, SG/SK/SM과 같은 레이더, YE함재기귀환유도비콘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항공모함의 각 분야 참모들은 함장과 떨어지지 않고도 각자 부서의 필요한 정보와 보고를 모두 받아 함장에게 조언할 수 있었지요.>
<함재기 관제와 제한적인 조함외엔 급조, 간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소형 함교입니다. 함장과 그 참모들을 모두 수납하고 그에 따른 관제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수 참모들은 함내의 각부에 위치하거나, 제대로 된 현장보고를 들을 수 없었고. 정확한 의사전달, 의사전파가 힘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데미지 컨트롤, 함재기 관제 양면에서 모두 미국식에 비해 불리했습니다.>
때문에 일본식 항모는 항공갑판, 격납고 운용은 물론 함재기의 발착통제 효율성이 미국식 항모보다도 떨어졌고. 거기에 더해 피탄시 데미지 컨트롤에서도 큰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결과론적으로 데미지컨트롤은 함장이하 여러 참모들의 일사분란한 지휘로 행해져야 합니다. 만약 함장이나 여러 참모들이 함의 정확한 피해상황이나 상태를 직시하지 못하면 과감하고 직접적이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지요.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함교에서 그저 목소리만으로 불이 타오른다, 갑판에 파공이 났다, 어느 부위에 물이 센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딱히 와닿는 것이 없습니다. 불이 얼마나 대단한지, 물구멍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식 대형 아일랜드에선 갑판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심지어 위치한 현측의 파공을 확인할 수 있고, 치솟아 오르는 연기 역시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함장은 다년간의 경험과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상황을 파악해 현실성 있고 효율성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덕분에 미국항공모함의 함장들은 여러 피탄에도 불구하고, 폭탄을 죄다 바다에 쳐박으라거나, 함재기를 버리라거나, 어느 격벽을 통째로 열고, 닫으란 과감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해군이라면 상상도 못할 과감한 데미지 컨트롤은 본래의 튼튼한 구조강도와 맡물려 생존성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지요.
그리고 이런 개장항모의 한계성과 단점은 일본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긴, 생각하지 않아도 요크타운이라는 걸물이 미국에서 등장했으니 배우지 않을래야 배우지 않을 수가 없었겠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쁜 놈도 선생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일본입장에선 밉고 미운 양키들도 선생노릇 톡톡히 했지요.)
일본은 항모를 개장하고, 개조할 때도 난기류에 따른 문제를 세심하게 신경썼습니다. 이 덕에 측면/후미(이후 측면) 연돌을 채용했고, 아일랜드 역시 측면연돌의 정반대에 배치시켰지요. 하지만, 측면에 배연구를 설치하면 뜨거운 배연가스가 바닷물에 닿아 식으며 난기류 문제를 경감시켜 줄 것이라 생각한 설계는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측면연돌은 일부 선실을 심각하게 달궜고, 중량배분은 물론 공간활용에도 불리했습니다. 거기에 식은 가스라도 여전히 뜨겁기는 매한가지라 난기류를 발생시키는 건 여전한 문제였습니다. 거기에 차라리 연돌을 위로 높게 뽑아올려 이착함하는 항공기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배제한 미국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측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배기개스가 비행기의 발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더운 배기개스가 항공갑판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는 소립니다.)
거기에 연돌과는 반대에 아일랜드를 장비한 결과, 우현에서 올라온 개스로 인해 좌측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항공기는 좌현의 아일랜드와 충돌할 수도 있었죠. 결국 일본 파일럿들은 공공연히 불만을 토해냈습니다. 실제적인 실험과 데이터 없이 기술자의 현실성 없는 뇌내망상, 해군부의 경험부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야 미영도 별다를 건 없었지만...
일본의 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1935년 개장까지 질질 끌고 갔다는 겁니다.
(니들이 삽푸는 동안 미국은 이런저런 삽질은 끝내고 명품 항모 요크타운이 나왔단 말이다아!!!)
거기에 일본항모의 전형적인 특징은 우현 전방 소형 아일랜드의 경우도...
내내 지적받는 이야기지만. 단층식 격납고로 인해 무게중심이 비교적 잘잡혀 있는 미국항모는 높고 큰 아일랜드를 설비하는 게 가능했지만. 일본은 복층식 격납고와 이로 인한 높은 무게중심과 벨런스 웨이트 문제로 내내 소형함교만을 설치하게 되죠.
그 결과 함의 조함은 관두고, 작전지휘에 여러 문제점을 도출하게 됩니다. 함의 전체적인 모습을 관찰하고 함장 이하 여러 스태프들이 함을 관리하는 아일랜드의 존재는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죠. 함의 지휘는 물론 함재기의 이착함에도 큰 요소를 차지하기 때문에. 아일랜드란 물건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남아 있고, 함재의 이착함, 갑판계류, 격납고 이송등을 관리하는 AirBoss등이 아일랜드에 하루 종일 상주합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식 대형아일랜드는 일본보다 대형이기에 함재기에 주는 악영향이 더 커보이지만. 함재기 운용과 통제, 관제는 물론 함의 조함과 데미지컨트롤에서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에 위치한 함장은 모든 것이 구비된 환경하에서 정확한 대수상, 대공중, 함내부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일랜드엔 MK.51같은 자동사격관제장비, SG/SK/SM과 같은 레이더, YE함재기귀환유도비콘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항공모함의 각 분야 참모들은 함장과 떨어지지 않고도 각자 부서의 필요한 정보와 보고를 모두 받아 함장에게 조언할 수 있었지요.>
<함재기 관제와 제한적인 조함외엔 급조, 간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소형 함교입니다. 함장과 그 참모들을 모두 수납하고 그에 따른 관제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수 참모들은 함내의 각부에 위치하거나, 제대로 된 현장보고를 들을 수 없었고. 정확한 의사전달, 의사전파가 힘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데미지 컨트롤, 함재기 관제 양면에서 모두 미국식에 비해 불리했습니다.>
때문에 일본식 항모는 항공갑판, 격납고 운용은 물론 함재기의 발착통제 효율성이 미국식 항모보다도 떨어졌고. 거기에 더해 피탄시 데미지 컨트롤에서도 큰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결과론적으로 데미지컨트롤은 함장이하 여러 참모들의 일사분란한 지휘로 행해져야 합니다. 만약 함장이나 여러 참모들이 함의 정확한 피해상황이나 상태를 직시하지 못하면 과감하고 직접적이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지요.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함교에서 그저 목소리만으로 불이 타오른다, 갑판에 파공이 났다, 어느 부위에 물이 센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딱히 와닿는 것이 없습니다. 불이 얼마나 대단한지, 물구멍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식 대형 아일랜드에선 갑판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심지어 위치한 현측의 파공을 확인할 수 있고, 치솟아 오르는 연기 역시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함장은 다년간의 경험과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상황을 파악해 현실성 있고 효율성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덕분에 미국항공모함의 함장들은 여러 피탄에도 불구하고, 폭탄을 죄다 바다에 쳐박으라거나, 함재기를 버리라거나, 어느 격벽을 통째로 열고, 닫으란 과감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해군이라면 상상도 못할 과감한 데미지 컨트롤은 본래의 튼튼한 구조강도와 맡물려 생존성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지요.
그리고 이런 개장항모의 한계성과 단점은 일본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긴, 생각하지 않아도 요크타운이라는 걸물이 미국에서 등장했으니 배우지 않을래야 배우지 않을 수가 없었겠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쁜 놈도 선생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일본입장에선 밉고 미운 양키들도 선생노릇 톡톡히 했지요.)
[4. 일본류의 완성 히류와 쇼가쿠]
영국을 참고해 개장한 카가와 아카기를 건조한 일본은 함재기 운용 경험이 쌓이고, 이들 함재기 운용에 따른 피드백을 쌓아올려. 항공모함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정립해 나가게 되죠. 그 결과 여러 난잡한 개선사안을 하나씩 만족시켜. 마침내 최초의 정규항공모함을 건조하게 됩니다.
카가와 아카기의 단점만을 골라잡아 건조한 문제아 이른 바 빌어먹을 '류조'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덕이었죠.-_-;;
<격납고가 너무 크고 높아서, 능파성이나 수밀성, 무게중심문제가 다발. 여기에 파도 치면 톡하고 깨질 것 같은 구조강도. 딱봐도 불안하게 생겨먹었습니다. 물에 잠긴 부분보다 쌓아올린 게 더 크니...너도 참 후우...>
이렇게 남들도 하는 삽질이라지만. 남보다 1~2번 삽질을 더한 끝에야 본격 정규 항공모함 '소류 (蒼龍 [日] IJN Soryu [英])'를 런칭시켰습니다.
비록 해군조약의 틀에 묶여 배수량문제로 여러 성능이 제한되었지만. 그래도 소류는 일본식 항모의 전형을 보여주지요. 복층식 폐쇄 격납고, 고속대형기관, 함수와 함미를 통째로 덮는 긴 항공갑판. 카가와 아카기가 일본식 1세대 항모라면 소류는 비로소 2세대라는 신세대 항모로서 태어난 것이지요.(그 중간 류조는 삽질의, 삽질에 의한, 삽질을 위한 녀석일뿐.)
그리고 이 소류의 단점을 완전히 제거하고 태어난 것이 바로 히류 (飛龍 [日] IJN Hiryu [英]) 입니다.
이를테면 소류가 일본의 레인저라면 히류는 바로 일본의 요크타운에 비견할만한 항모인 것이지요.
소류의 여러부분을 개량하고, 개선해 한층 더 여유있는 배수량을 이용해 건조한 히류는 2층 격납고를 가지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무게중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배수량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훨씬 대형인 개장항모 아카기 카가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항모를 운영함에 있어 가장 유념해둘 요소가 '선빵이 최고다'라는 걸 기억한다면. 선빵에 써먹을 항공기를 더 빨리, 많이 날릴 수 있는 히류야 말로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항모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종의 전형을 만들어두어 이후로도 그 특징들이 주욱 이어지는 미국항모들과는 달리 아직도 일본에 있어 항모의 전형이란 미완성이었습니다. 즉, 해결못한 미결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건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히류도 여전해서. 히류의 확대개량판인 쇼가쿠 (翔鶴 [日] IJN Shokaku [英]) 가 등장하게 될 때 여러 변화가 생깁니다.
하지만 히류의 완성도 있는 설계는 매우 우수해서. 히류를 알면 이후 등장하는 일본의 모든 정규항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쇼가쿠, 운류 (雲龍 [日] IJN Unryu [英]) 가 히류의 핏줄을 이어받았고, 다른 다이호 (大鳳 [日] IJN Taiho [英])의 건조에도 히류의 설계가 쓰였고, 시나노 역시 히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에식스가 요크타운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걸 기억한다면. 히류야 말로 일본의 요크타운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리고 2차세계대전당시 그 완성도, 활용성, 위력, 전과 모두에서 태평양/대서양 최강자인 에식스와 유일하게 대항이 가능한 쌍벽 쇼가쿠가 일본식 항모의 궁극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야 말로 일본 최고의 항모를 지향하고 설계된 이 신예 항모는 모든 면에서 이전 항모들을 능가했습니다.
하지만,어디까지나 대항이 가능하고 쌍벽을 이룰만한 것이지. 에식스급을 능가할 순 없었지요. 일본의 제한된 공업능력과 과학기술력. 그로 인한 항공기 능력의 제한, 그리고 일본항모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한 여러 기술적 특징에 의해 일본제/식 항모들은 미국제 항모보다 항상 그 능력이 떨어지거나, 심각한 단점들을 포용하고 있었습니다.
[5. 총평]
비교를 하고 싶진 않지만. 비교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지요.ㅡㅡ
전반적으로 일본제 항모들은 해군조약을 적당히, 파격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몰래 쌩까고 만들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미국제 항모보다 덩치가 크고, 장갑이나 방어력설계시 한계가 덜했습니다. 배수량이나 조약의 제한을 적당히 까고 만들었기 때문에 장갑을 달아도 1인치라도 더 두꺼운 것이 일본제였고, 수밀구역이나 방뢰공간 역시 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해군군축조약을 벗어나 미국이 작심하고 만든 녀석이 에식스 클래스라는 것. 그리고 이 에식스가 당시 일본제 항모를 모두 통털어도 능가할 녀석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세상은 정직한 놈은 손해보는 것입니다.(물론 그런 바보같은 우직함때문에 요크타운이란 걸작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설계를 바탕으로 태평양 최강 괴수 에식스가 나왔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제와 일본제를 가늠짓는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가. 개방형 VS 폐쇄형}
Yankee
<주장갑대 위에 겔러리덱(수병탑승구, 각종 자질구레 선실). 이 겔러리 덱위로 격납고 덱이 있고. 격납고 위로 나무로 만든 비행갑판이 위치합니다. 집으로 치면 공구리 바닥에 석재타일을 깔고 쇠기둥을 세웠는데 지붕은 너와지붕이지요-_-
덕에 97식 99식이 새똥을 흘릴 경우 여지없이 격납고까지 폭탄이 뚫고 들어와 불바다가 되었지만. 격납고 장갑이 2.5인치에 그 아래 탄약고과 기계실, 유류탱크는 또다시 주장갑으로 보호받고 있었죠. 간단히 말해 비행기와 활주로, 격납고는 박살나도 배 자체의 생존성은 보존받는 설계.
무엇보다 가벼운 너와지붕을 올린 덕에 무게중심이 아래에 잡혀 중량배분에 여유가 큰 편이었죠. 아무리 큰 항공모함이라도 무게중심이 위에 있으면, 격납고에 비행기를 어떻게 올려두나, 비행갑판엔 비행기를 몇대나 올려두는가에 대해 세심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에식스 요크타운급은 모두 터프했습니다. 노천계지로 이한 중량배분 문제를 거의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고스란히 함재기 운용능력상승으로 돌아왔지요.>
Monkey
<일본식 항모 스타일은. 하나의 특징을 꼬옥 공유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폐쇄식 격납고입니다. 그리고 그 폐쇄식 격납고는 어김없이 복층식이지요. 덕분에 똑같은 엘리베이터 개수를 가졌지만. 일본제 항모가 1층과 2층의 항공기를 꺼내드느라 교통체증(?)에 시달린 반면, 미국제는 그냥 올린다는 소리는 곧 활주로로 비행기를 내보낸다는 소리였으므로 여러모로 편했죠.
뿐만 아니라, 수선대 위에 2층이나 되는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활주로를 깔았으니. 당연히 무게중심이 높습니다. 물론 히류나 쇼가쿠에. 그리고 아카기 카가는 벌지를 깔아 이를 해결했지만. 그래도 항공기의 노천계지, 그리고 이에 의한 중량배분 문제는 늘 일본제 항모를 괴롭혔습니다.>
Yankee
<주장갑대 위에 겔러리덱(수병탑승구, 각종 자질구레 선실). 이 겔러리 덱위로 격납고 덱이 있고. 격납고 위로 나무로 만든 비행갑판이 위치합니다. 집으로 치면 공구리 바닥에 석재타일을 깔고 쇠기둥을 세웠는데 지붕은 너와지붕이지요-_-
덕에 97식 99식이 새똥을 흘릴 경우 여지없이 격납고까지 폭탄이 뚫고 들어와 불바다가 되었지만. 격납고 장갑이 2.5인치에 그 아래 탄약고과 기계실, 유류탱크는 또다시 주장갑으로 보호받고 있었죠. 간단히 말해 비행기와 활주로, 격납고는 박살나도 배 자체의 생존성은 보존받는 설계.
무엇보다 가벼운 너와지붕을 올린 덕에 무게중심이 아래에 잡혀 중량배분에 여유가 큰 편이었죠. 아무리 큰 항공모함이라도 무게중심이 위에 있으면, 격납고에 비행기를 어떻게 올려두나, 비행갑판엔 비행기를 몇대나 올려두는가에 대해 세심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에식스 요크타운급은 모두 터프했습니다. 노천계지로 이한 중량배분 문제를 거의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고스란히 함재기 운용능력상승으로 돌아왔지요.>
Monkey
<일본식 항모 스타일은. 하나의 특징을 꼬옥 공유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폐쇄식 격납고입니다. 그리고 그 폐쇄식 격납고는 어김없이 복층식이지요. 덕분에 똑같은 엘리베이터 개수를 가졌지만. 일본제 항모가 1층과 2층의 항공기를 꺼내드느라 교통체증(?)에 시달린 반면, 미국제는 그냥 올린다는 소리는 곧 활주로로 비행기를 내보낸다는 소리였으므로 여러모로 편했죠.
뿐만 아니라, 수선대 위에 2층이나 되는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활주로를 깔았으니. 당연히 무게중심이 높습니다. 물론 히류나 쇼가쿠에. 그리고 아카기 카가는 벌지를 깔아 이를 해결했지만. 그래도 항공기의 노천계지, 그리고 이에 의한 중량배분 문제는 늘 일본제 항모를 괴롭혔습니다.>
{나. 방어력}
결과론적으로 여러 사료를 살펴봐도. 일본제 항모의 방어력이 더 두꺼운 장갑에도 불구하고 더 취약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제 견해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폐쇄식 격납고입니다. 물론 개방형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같은 폭탄을 얻어맞는다면 폐쇄식 쪽이 몇배는 더 데미지를 컨트롤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차피 영국제 장갑항모와는 달리 미/일 항모 공히 폭탄을 얻어맞으면 100% 격납고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이때 격납고 옆이 훵하니 트인 미국제 항모는 폭탄의 파편과 화염 폭압이 함내 밖으로 대부분 나가버립니다. 이 때문에 피해구역은 폭탄을 맞은 구역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화재가 일어나도 해당구역의 기자재를 가져다 버려 더 이상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고, 정돈하면 됩니다.
어차피 옆이 훤히 트여 있으니 엘리베이터로 기자재를 밖으로 올려보낸다고 난리를 부리지 않아도. 불이 붙지 않았지만, 번질것 같은 탄약이나 연료, 비행기, 기자재를 바다로 쓸어넣으면 그만이죠. 실제로도 미국제 항모는 피탄 1시간만에 비행갑판을 복구하고 함재기 운용능력을 회복하곤 했습니다. 가공할만한 카미카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개방형 격납고 구조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식 항모는 그 격납고가 폐쇄형 구조였고. 복층형 구조였습니다. 폭탄을 맞게 되면 우선 1층이든 2층이든 모두 피해를 받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함재기와 연료, 탄약이 미국제보다 2배로 밀집된 형국이었으니. 그 결과가 빤하지요. 뿐만 아니라 재수없게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미국제보다 더 피해가 컸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1층 2층 격납고가 서로 사용하니.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2배 피해이지요.
거기에 폐쇄식 격납고를 채용한 덕에 밀집된 '연료'들을 치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불이 붙을 걸 빤히 알면서도 탄약이나 항공기를 바다에 쓸어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데미지컨트롤에서의 난맥상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폭탄이 명중하면 그 파편과 폭발 에너지를 100%흡수하게 되고, 그에 따른 탄편과 파편이 추가피해를 입히게 되지요.
이는 동일한 숫자의 폭탄을 맞고도 요크타운급은 살아남는 반면, 일본의 여러 항모들은 데미지를 제어하지 못하고 배를 포기하거나, 전투력을 완전히 사실하게 되게 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더 큰 배수량, 더 큰 덩치, 더 두거운 장갑을 가지고서도 말이죠.
결과론적으로 여러 사료를 살펴봐도. 일본제 항모의 방어력이 더 두꺼운 장갑에도 불구하고 더 취약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제 견해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폐쇄식 격납고입니다. 물론 개방형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같은 폭탄을 얻어맞는다면 폐쇄식 쪽이 몇배는 더 데미지를 컨트롤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차피 영국제 장갑항모와는 달리 미/일 항모 공히 폭탄을 얻어맞으면 100% 격납고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이때 격납고 옆이 훵하니 트인 미국제 항모는 폭탄의 파편과 화염 폭압이 함내 밖으로 대부분 나가버립니다. 이 때문에 피해구역은 폭탄을 맞은 구역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화재가 일어나도 해당구역의 기자재를 가져다 버려 더 이상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고, 정돈하면 됩니다.
어차피 옆이 훤히 트여 있으니 엘리베이터로 기자재를 밖으로 올려보낸다고 난리를 부리지 않아도. 불이 붙지 않았지만, 번질것 같은 탄약이나 연료, 비행기, 기자재를 바다로 쓸어넣으면 그만이죠. 실제로도 미국제 항모는 피탄 1시간만에 비행갑판을 복구하고 함재기 운용능력을 회복하곤 했습니다. 가공할만한 카미카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개방형 격납고 구조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식 항모는 그 격납고가 폐쇄형 구조였고. 복층형 구조였습니다. 폭탄을 맞게 되면 우선 1층이든 2층이든 모두 피해를 받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함재기와 연료, 탄약이 미국제보다 2배로 밀집된 형국이었으니. 그 결과가 빤하지요. 뿐만 아니라 재수없게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미국제보다 더 피해가 컸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1층 2층 격납고가 서로 사용하니.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2배 피해이지요.
거기에 폐쇄식 격납고를 채용한 덕에 밀집된 '연료'들을 치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불이 붙을 걸 빤히 알면서도 탄약이나 항공기를 바다에 쓸어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데미지컨트롤에서의 난맥상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폭탄이 명중하면 그 파편과 폭발 에너지를 100%흡수하게 되고, 그에 따른 탄편과 파편이 추가피해를 입히게 되지요.
이는 동일한 숫자의 폭탄을 맞고도 요크타운급은 살아남는 반면, 일본의 여러 항모들은 데미지를 제어하지 못하고 배를 포기하거나, 전투력을 완전히 사실하게 되게 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더 큰 배수량, 더 큰 덩치, 더 두거운 장갑을 가지고서도 말이죠.
{다. 함재기 운용능력}
단층식의 최대한의 함내 공간을 점유한 미국식 단층 격납고는 일본식보다 넓고, 높았습니다. 물론, 2층 격납고를 채택한 일본식이 격납고 면적만을 놓고 본다면 미국제보다 더 넓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제 항모의 격납고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이로 인해 함재기의 탑재가 제약을 받았습니다.(이 부분은 날개를 접으면 높이가 14피트까지 올라가 버리는 F-4U코르세어를 영국해군이 운용하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장갑항모가 격납고 높이가 낮았거든요. 애 좀 먹었지요. 아예 운용을 못하든지.)
물론, 일본 함재기 자체가 구조적인 강도나 여러 문제로 적극적인 윙폴딩능력을 이용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윙폴딩을 하게 설계한다 해도 날개를 접어 면적을 줄이는 대신 함재기의 적재 높이가 올라가 용적을 잡아먹는 형국이었으므로. 결과론적으로 함재기를 적재하는 능력에 있어서 미국식이 일본식을 늘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쇼가쿠와 비슷한 배수량과 능력을 지닌 에식스가 전후반기 전투기 위주로 130기 가량의 함재기를 운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차이는 항공모함의 공방능력 차이를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제 함재기가 일본제보다 덩치가 더 크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차이가 꽤나 났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미국은 에식스에서부터 현측 엘리베이터를 적극채용했고, 무게중심이 남아 노천계지 역시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함재기 적재, 운용능력 양면에서도 차이가 났지요. 미국은 개방형 격납고로 인해 격납고에서 이륙을 위한 엔진시동을 걸고, 폭탄과 탄약, 연료를 적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때문제 활주로로 올라가서 준비작업을 하느라 꾸물거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죠.
여기에 상대적으로 신뢰성 있는데다 단층구조로서 왕복속도가 빠른 엘리베이터는. 갑판위 함재기가 날아오르면 재빨리 이륙시킬 항공기를 보충해줄 수 있었죠. 여기에 더해 미국의 경우 중량 분배 문제를 신경쓰지 않고 항공갑판 위에 함재기를 그대로 운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 때문에 항상 노천계지 항공기 만큼을 더 날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런식으로 당장 이착함 속도가 차이가 났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제 항모는 덩치가 큰 일본제 항모보다 1.5배 이상 큰 공격대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착함 속도가 늦은 일본은 각개격파를 당하기 일쑤였거든요.(항모의 숫자가 작고, 함재기 숫자가 적고, 배수량이 작아도 항시 미국항공모함 공격대의 숫자가 일본의 그것에 비해 비등하거나 더 컸다는 건 여러가지를 시사해줍니다. 이뿐 아니라 일본제 급강하 폭격기들이 250Kg폭탄을 탑재한 반면, 미국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는 500Kg 폭탄을 운용했으니, 이미 화력지수에도 안드로메다급 차이가 벌어져 있는 셈이었죠.)
단층식의 최대한의 함내 공간을 점유한 미국식 단층 격납고는 일본식보다 넓고, 높았습니다. 물론, 2층 격납고를 채택한 일본식이 격납고 면적만을 놓고 본다면 미국제보다 더 넓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제 항모의 격납고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이로 인해 함재기의 탑재가 제약을 받았습니다.(이 부분은 날개를 접으면 높이가 14피트까지 올라가 버리는 F-4U코르세어를 영국해군이 운용하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장갑항모가 격납고 높이가 낮았거든요. 애 좀 먹었지요. 아예 운용을 못하든지.)
물론, 일본 함재기 자체가 구조적인 강도나 여러 문제로 적극적인 윙폴딩능력을 이용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윙폴딩을 하게 설계한다 해도 날개를 접어 면적을 줄이는 대신 함재기의 적재 높이가 올라가 용적을 잡아먹는 형국이었으므로. 결과론적으로 함재기를 적재하는 능력에 있어서 미국식이 일본식을 늘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쇼가쿠와 비슷한 배수량과 능력을 지닌 에식스가 전후반기 전투기 위주로 130기 가량의 함재기를 운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차이는 항공모함의 공방능력 차이를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제 함재기가 일본제보다 덩치가 더 크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차이가 꽤나 났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미국은 에식스에서부터 현측 엘리베이터를 적극채용했고, 무게중심이 남아 노천계지 역시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함재기 적재, 운용능력 양면에서도 차이가 났지요. 미국은 개방형 격납고로 인해 격납고에서 이륙을 위한 엔진시동을 걸고, 폭탄과 탄약, 연료를 적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때문제 활주로로 올라가서 준비작업을 하느라 꾸물거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죠.
여기에 상대적으로 신뢰성 있는데다 단층구조로서 왕복속도가 빠른 엘리베이터는. 갑판위 함재기가 날아오르면 재빨리 이륙시킬 항공기를 보충해줄 수 있었죠. 여기에 더해 미국의 경우 중량 분배 문제를 신경쓰지 않고 항공갑판 위에 함재기를 그대로 운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 때문에 항상 노천계지 항공기 만큼을 더 날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본식 = 격납고→ 타층격납고 타임레깅→활주로→연료주입→탄약→점검 및 준비→이륙→편대구성
미국식 = 격납고→ 활주로→점검 및 준비→이륙→편대구성
미국식 = 격납고→ 활주로→점검 및 준비→이륙→편대구성
이런식으로 당장 이착함 속도가 차이가 났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제 항모는 덩치가 큰 일본제 항모보다 1.5배 이상 큰 공격대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착함 속도가 늦은 일본은 각개격파를 당하기 일쑤였거든요.(항모의 숫자가 작고, 함재기 숫자가 적고, 배수량이 작아도 항시 미국항공모함 공격대의 숫자가 일본의 그것에 비해 비등하거나 더 컸다는 건 여러가지를 시사해줍니다. 이뿐 아니라 일본제 급강하 폭격기들이 250Kg폭탄을 탑재한 반면, 미국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는 500Kg 폭탄을 운용했으니, 이미 화력지수에도 안드로메다급 차이가 벌어져 있는 셈이었죠.)
[라. 결언]
나름대로의 장르를 개척한 일본식 항모지만. 근본적으로 내재된 단점을 해결할 의지도, 기술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복층식 격납고는 부족한 함재기 적재수를 늘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폐쇄형 격납고 역시 복층식으로 인한 격납고 구조지탱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 낮은 격납고 높이로 인한 함재의 사이즈 제한. 중량배분 문제로 인한 개량의 난이도 증대. 함재기 이착함 속도의 저하등등등.
모방으로 시작해, 충실한 모방으로 빛을 봤지만. 모방이 아닌 창조의 차원으로 넘어갔을 땐. 다시금 히키코모리로 돌아간 일본해군의 항공모함군은...
영영 멸종해버렸지요.
(장갑갑판의 개념을 남긴 영국항모, 현재 항모 그 자체인 미국제 항모등등. 일본제 항모는 그 어떠한 유전적 특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만. 그것이 패자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기술적, 설계적으로 봤을 때 도퇴됬어야만 했기 때문이란 것은 그저 슬플 따름이죠.)
[6. 추가.]
물론 완소 미국 헉헉거리는 제 헛소리를 보시며.
'덜허운 양키노무 쉐액기'
미국제보단 일본제가 더 덩치가 크고, 고성능이다! 나의 완소! 세계최대 시나노를 중얼거리는 분도 계시겠지만...그 경우.
닥치고 미드웨이를 보시면 됩니다.
1945년 10월에 실전배치된 최신예 항모.
영국제 장갑항모에 흥미로움을 느껴 많은 부분 영국제의 컨셉과 엣센스를 받아들인 항모되겠습니다. 만재 59,000톤이라는 연합군 최대의 덩치. 295미터라는 엄청난 갑판길이 전장 40미터의 여유로움. 여기에 5"/54cal 18문, 40mm 84문, 20mm 68문.등으로 대공병장으로 떡칠을 했고, 33노트란 엄청난 고속항주능력을 보유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그 덩치로 몸소 장갑을 바르니. 영국제 장갑항모를 능가하는 방탄성능을 보유했습니다. 무려 3.5인치 장갑비행갑판을 채용하고, 그 아래에 2인치 주장갑을 쳤습니다. 코닝타워엔 6.5인치 장갑을 치고 수선하 방어구역은 5개층 총91mm. 5미터 폭의 방뢰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어뢰 3~4발로는 어림도 없고, 500파운드 폭탄으로 이 녀석을 어찌해보겠다는 기대감은 접어야겠죠.
무엇보다 통상 137기의 탑재기는 가히 절망이죠. 전쟁후반기 에식스처럼 전투기 위주에 노천계지까지 끌어쓴다면 150기 이상의 함재기를 보유하는 공전절후의 괴수스러움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아우...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막장이잖아...(...)
그냥 쉬운 결론 내자면, 대일본제국에 대동아공영권같은
팔자에도 업ㅂ는 ㅄ삽질에 아따따뚜겐하고
우끼고 자빠지면, 저렇게 자빠링되는 거임ㅇㅇ.
그냥 쉬운 결론 내자면, 대일본제국에 대동아공영권같은
팔자에도 업ㅂ는 ㅄ삽질에 아따따뚜겐하고
우끼고 자빠지면, 저렇게 자빠링되는 거임ㅇㅇ.
● 프라모델 작업과 그에 쓰인 군사사 지식을 찾느라고 여러군데 교차검증을 해본 결과, 핵교 도서관과 동네 도서관 겸 기타 사이트를 보고 내린 결론인 '허우대 좋은 두부살'인 건 확실한덧.
● 도면을 보니, 이제서야 좀 이해가 되네...내는 번역하고, 해독만 해서 개방식/폐쇄식 구조가 구체적으로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감ㅇㅇ
결국 미국과 영국과 더불어 덩치는 컸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업ㅂ는 애들이여서, 결국엔 도태처리. 하긴, 프라모델로만 봐도 병맛이 넘치드만ㅋ
※아무래도 SF규칙 및 위장규칙 도입해서, 마개조하는 쪽으로 가야게뜸ㅇㅇ. 어차피 어벤저는 UAV화할거니까 이미 현대화+당대장비 위장이고...
tag : 군사사, 2차대전사, 고증자료, 해전사, 일본군, 항공모함, 팔자에도_업ㅂ는짓하다_자빠링하면_보험처리도_안됨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