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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정치위원회의 잡담] 오늘자 뉴스 몇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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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태일의 ‘바보회’ 43년 만에 부활한다 - 노동 소외층 연대 5월 출범

1969년 6월 청년 전태일은 평화시장 재단사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들었다.

그가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은 바보”라는 선배 재단사들의 말을 듣고 “좋다. 바보답게 되든 안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고 만든 것이 바보회였다.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그동안 바보같이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바보같이 살지 말자’는 뜻에서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전태일은 바보회를 만든 뒤 평화시장의 노동조건 개선에 몸을 바쳤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조사한 뒤 개선을 요구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해고된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노동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에서 분신을 통해 온몸으로 저항했다. 전태일의 삶은 노동운동과 반독재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43년 만에 바보회가 부활한다.

전태일재단(이사장 조헌정)은 12일 “올해를 ‘전태일운동’ 원년으로 삼고 바보회를 재결성해 비정규직 노동자·이주노동자·장애노동자·청년 등과 현재의 소외 문제에 폭넓게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은 “전태일 열사가 불꽃으로 산화한 지 40여년이 흘렀지만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청년·장애인·이주민의 노동소외 등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며 부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바보회를 조직했던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를 불러내 그 뜻을 기억하고 현재의 수많은 ‘전태일’들과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태일운동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신(新)바보회는 오는 24일 재단 총회를 기점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노동절(5월1일) 전후 출범할 예정이다.

청년들을 주축으로 하되 청소년·중장년층 등 바보회의 취지와 정신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바보회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바보회 활동을 통해 청년노동자 문제를 재조명하고 전태일의 연대정신을 되살려 청년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 원래대로라면, 바보회 자체가 역사책에서나 나와야할 단체이지마는, 비정규직 문제가 어떤 의미에서 70년대 그때보다 더 지랄같은 때라는 걸 감안하면, 적십자와 비슷한 존재인듯 함미다. 잔혹한 세계사의 작가양반인 테디 디어리도 한 말이지만, '적십자가 필요없는 세상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긋지긋한 전쟁이 계속되는 한, 적십자는 항상 필요할 거다'가 여기에서도 적용된다는 걸 감안하면, 담배 한다스가 생각남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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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위안부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일본 정부 대신 사과”- 일본인 목사 ‘봉선화’ 연주

13일 오전 10시40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백발의 일본인 노인이 검은색 배낭을 멘 채 한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위안부소녀상으로 향했다. 노인은 배낭 안에서 플루트와 악보 받침대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홍난파의 ‘봉선화’였다. 연주가 끝나자 노인은 흐느끼며 위안부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들고 온 장미꽃 한 송이를 위안부소녀상 앞에 내려놓고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노인은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위안부소녀상에 무릎을 꿇은 일본인은 야마나시현 베다니교회의 노무라 모토유키 담임목사(81)다. 그는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70년대 초반 자신의 도쿄 자택을 팔아 청계천 철거민 등 한국 빈민들을 도와 붙여진 별명이다.

노무라 목사는 1970년대 빈민운동을 함께한 제정구 의원의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0일 입국했다. 노무라 목사는 이날 위안부소녀상 앞에서 봉선화 외에도 ‘진혼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했다. 박자를 놓치는 실수도 했지만 끝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를 마쳤다. 이날 연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을 대신해 사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소녀상(평화비) 앞에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플루트로 ‘봉선화’를 연주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노무라 목사는 봉선화를 연주한 이유를 묻자 “위안부들에게 의미가 있는 노래인 데다 한국인이라면 (노래를) 잘 알 것”이라며 “일본 침략이 없었으면 이 노래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5살 때부터 ‘조센징’이라고 불리며 차별받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예전에는 청계천 빈민활동도 했지만 나도 얼마나 살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여기 와서 연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왜 한국을 사랑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노무라 목사는 “일본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노무라 목사는 “이 일로 대사관에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릴지도 모르지만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사죄하도록 촉구할 예정이었다.

노무라 목사는 “개인 자격으로 온 것뿐인데 예상보다 많이 몰려든 취재진 때문에 대사관 측이 당황했을 것 같다”며 연주만 마치고 발길을 돌렸다.


● 근래들어 보기드문 일본'사람'. 원래대로라면 이것도 별 필요가 없어야하는 건데, 옆집이 워낙 병신킹이다보니 이건 항상 필요함미다 'ㅅ'

● 근데, 여기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게 “이 일로 대사관에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릴지도 모르지만 각오하고 있다”인데, 여기서 자체분석한대로 대일본제국 시즌2 냄새가 풀풀...(...)

● 사실 이 문제의 정석은, 야스꾸니 대딸방 뿌시고, 옆집 전국에 퍼진 교과서 제목붙인 만화책 다 걷어서 불사르고, 지금 기름때가 찌든 동맥을 뚫느라고 바쁜 일왕과, 자민당+민좃당 등 포함해서 당시 전범 후손새끼들 (사실 후손이라는 새끼들도 똑같은 개소리를 씨부리니, 연좌제가 적용가능)이 단체로 사죄하고, 할복하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긴 한데, 그 병신들이 그런거 할리가 없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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