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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정치위원회의 잡담] 둘 다 비스무리한 새끼들이...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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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 경제·군사력 추월에 일본 위기감… 언론서도 툭하면 ‘중국 위협론’

ㆍ일본이 바라보는 중국

일본의 대중 감정이 결정적으로 나빠진 해는 2010년이다. 이 해 9월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경비정 간 충돌사건이 발생했고, 연말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이 중국에 세계 2위 자리를 내줬다. 두 사건이 일본 국민에게 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일본 사회는 국제정치뿐 아니라 경제 면에서도 욱일승천의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박탈감과 열패감에 휩싸였다.

이후로도 일본은 대중관계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구상이 없는 사실상 ‘외교 공백’ 상태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집권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미·일 간 마찰로 물러난 이후 외교의 대미 쏠림현상이 더 심해졌고, 그런 만큼 중·일관계에 대한 독자적인 모색 노력은 실종됐기 때문이다. 다만 여타 국가들에 대한 외교행보에서 ‘대중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안간힘만은 두드러져 보인다. 주일미군 재편을 통해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넓힌 데 이어 인도, 버마와의 관계 강화에 나서는 한편 최근에는 태평양 섬나라들에 공을 들였다.


 


일본 언론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위협론’을 들먹이고 있다. 중국이 해양진출을 가속화하는 것이 일본에 안보위협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은 중국 선박이 센카쿠 열도 주변에 출몰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지난 13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센카쿠 열도를 중국의 ‘핵심적 이익’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중국위협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중국위협론은 한편으로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형성된 ‘전후체제’를 탈피하려는 일본 내 움직임에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강경보수계열 산케이신문이 최근 자체적인 헌법 개정 초안을 마련하면서 중국위협론을 든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고 있는데도 일본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무력행사를 포기한 현행 헌법에 있는 만큼 조속히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도 못 갖게 하는 헌법은 폐기해야 한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지난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찬성 여론이 우세하게 나오기도 했다. 야당인 자민당도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현행 헌법상 ‘국가의 상징’인 일왕을 ‘일본국 원수’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안을 지난달 말 발표한 바 있다.

노다 내각이 미국을 중시하는 데 비해 아시아 외교에서는 명확한 전략이 없다는 점도 대중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분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양국 선박 충돌 사건 이후 양국 관계 회복의 전기는 좀처럼 마련되지 않는 반면 도쿄도지사와 나고야 시장의 악재성 발언들이 돌출하고, 이를 정부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영토문제를 계기로 악화된 대중 여론에 영합하려는 인상도 풍기고 있다.




[경향신문] 중국 고위층, 일본 방문 잇단 취소… 관계 ‘최악’

ㆍ내부 결속 위해 서로 흠집내기

오는 9월 수교 40년을 맞는 중·일관계가 중국 측 고위인사들의 일본 방문이 줄지어 취소되면서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28일 예정된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이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후더핑은 양국 우호활동을 위해 일본을 1주일간 방문할 계획이었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1980년대 일본 지도층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의 아들의 일본 방문은 국교 정상화 40주년에 걸맞은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4월 역사를 왜곡한 일본 검정 교과서가 나오자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가 잇따랐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한 중국 소년이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건물에 페인트공을 던지고 있다. 상하이 | AP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중국이 반(反)중 조직으로 규정한 세계위구르회의가 열리자 후 위원의 방문을 취소한 것이다.

앞서 지난 21일에는 중국 군부 실력자인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일본 방문 취소 소식이 전해졌다. 궈 부주석은 당초 4월 중순에 일본을 방문하려 했다가 북한의 로켓 발사 시기와 겹쳐 한 차례 미룬 뒤 결국 취소했다. 그의 방일 취소도 세계위구르대회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밖에 지난 2월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일본 나고야 시장의 난징대학살 부정 발언을 시작으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매입 추진 계획에 이르기까지 양국 간에는 악재가 겹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가 일본행을 백지화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중·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집권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의 부상은 일본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는 수사일 뿐 노다 내각의 외교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참가 협상, 주일미군 재편 등 미·일관계에만 주력할 뿐 대중외교는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심어왔다. 노다 총리는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회담에서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문제를 염두에 둔 듯 “ ‘중·일 인권대화’ 협의체를 활용해 (인권문제에) 협력하자”며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기도 했다.

노다 내각의 대중 태도 배경에는 집권 반년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며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관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정권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대중관계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보수세력이 쳐둔 외교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포퓰리즘적 태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중국도 올가을 10년 만의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어 역사적 구원이 깊은 일본에 강경대응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보수적인 일본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극우성 발언을 중국이 우려하는 것 같다”면서 “양국은 올해 수교 40주년을 맞아 분위기를 띄워야 하지만 현재의 악화된 관계가 단기간에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리커창 부총리가 지난 25일 베이징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를 만나 세계위구르대회와 영토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을 전달해 주목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상대적으로 중국 지도부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해온 민주당 출신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과거사 문제에서 진일보한 시각을 갖고 있다. 양국 간 관계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통 인식이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과거사·영토문제 늘 걸림돌… 중국-일본 ‘냉온탕’ 애증의 40년

2차 세계대전에서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도 중·일관계는 지속적으로 적대적이었다. 양국 국교 정상화는 1972년 9월에야 이뤄졌다. 이후 40년 동안 양국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애증의 관계를 맺어왔다.

수교에 이어 1978년 8월 평화우호조약까지 체결한 두 나라의 관계는 1980년대 들어 급격히 가까워졌다.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막대한 시장을 외면할 수 없었고, 개혁·개방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중국도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에 따른 일본의 대중 경제 제재로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대 고비를 맞았다.

1992년 아키히토 일왕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돌파구를 찾은 양국 관계는 1990년대 중반 다시 악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1995년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일본 방문을 허용한 것이다. 이어 1995년 중국의 지하 핵실험, 1996년 미·일 신안보 협력 선언 및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 등 대형 악재가 잇따랐다. 양국 관계가 얼어붙을 때는 최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이 해법으로 등장했다. 199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계기로 당시 장쩌민 주석이 중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양국 관계에는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2002년 수교 30주년을 맞아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됐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와 2005년 4월 역사를 왜곡한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발표 이후 두 나라 관계는 다시 냉각됐다.

2008년 두 나라 관계가 전략적 호혜관계로 격상되면서 2010년 상반기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 싶더니 2010년 9월 일본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과 선원을 일본이 구속하자 반일 감정이 중국에서 불타 올랐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등 일본을 거세게 압박했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 집권한 노다 총리는 12월 중국을 방문했다.

올해 수교 40주년을 앞두고 우호적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듯하던 양국 관계는 지난 2월 나고야 시장의 난징대학살 망언과 이달 세계 위구르 대회가 도쿄에서 열리면서 다시 얼어붙었다. 국가이익이 걸린 영토분쟁과 역사교과서 문제가 잠복해 있어 양국은 언제 삐거덕거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어린이들끼리 잘들 한다...(...)

중국은 티벳이나 위구르, 기타 깽판질을, 일본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제국주의 파시스트 국가인 걸 감안하면 쟤들도 주둥이가 800만개라고 해도 할말은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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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훌라 학살 규탄 안보리 성명… 러시아도 동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7일(현지시간)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시리아 중부 훌라에서 대규모 포격으로 어린이 49명 등 민간인 108명이 사망한 ‘훌라 학살’ 사태를 논의하고 이를 비난하는 대언론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안보리 회원국들은 성명에서 “안보리 이사국들은 모든 당사자에게 모든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면서 “폭력행위를 자행한 자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해당 지역에서 중화기를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안보리는 이날 성명에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직접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시리아 정부군이 이번 학살에 개입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성명은 “안보리는 훌라에서 유엔 휴전감시단이 확인한 수십명의 학살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면서 “이번 공격에는 민간인 주거지역에 대한 정부군 대포와 탱크의 포격이 포함돼 있다”고 적시했다. 그동안 시리아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러시아는 학살 배후에 아사드 정부가 연관돼 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시리아 현지의 유엔 휴전감시단장의 증언을 청취한 뒤 결국 성명에 동의했다. 이날 채택된 대언론 성명은 안보리 의장 성명보다 약한 수준으로 구속력은 갖고 있지 않다.

코피 아난 유엔·아랍연맹 특사는 2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재방문했다. 아난 특사는 왈리드 무알렘 외무부 장관을 만난 후 29일 아사드 대통령과 면담할 예정이다. 이 면담이 이번 사태 해결의 중요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건 저 쌍놈들 손발모가지를 짤라버릴 수 있는

 구속력있는 뭔가를 하면 됨ㅇㅇ

뒤늦긴 했지만, 러시아가 끼어서 대언론 성명을 낸 건 좋긴 한데, 우째 일터지고 뒤늦게 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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